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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클라우드 사진파일 저장하는 방법동영상 올리기 다운로드

     

동영상이나 사진이미지 파일들을 컴퓨터에 저장할 때, 내 컴퓨터내부의 하드디스크나 외장하드에 저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컴퓨터내부의 하드디스크 저장공간에 계속해서 동영상같은 용량이 큰 파일들을 저장해가면, 저장공간이 부족해지게 되며, 새로운 이미지나 동영상을 저장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내 컴퓨터에 저장공간이 부족해질 경우에는, 새로운 외장하드를 구입해서 저장공간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렇지만 외장하드를 구입하려면 고가의 구입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외장하드가 생각보다 고장이 잘 나서, 외장하드에 새로운 파일들을 저장했다가 동영상이나 이미지파일들을 한순간에 날려보내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난다.

 

네이버 클라우드 저장소

 

필자는 수개월 전에 1TB용량의 도시바 외장하드를 구입했다가, 외장하드가 고장나는 바람에 수백기가 분량의 많은 동영상파일들을 한순간에 날려보냈던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다.

 

이렇게 컴퓨터내의 저장공간이 부족해지게 되면, 고가의 돈(8~12만원)을 지불하고 외장하드를 사서, 저장공간을 늘릴 수밖에 없는데,

외장하드가 고장이 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나서, 돈은 돈대로 날리고, 소중한 나의 이미지 및 동영상 자료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단 한푼의 비용부담없이 나의 소중한 파일들을 저장할 수 있는 저장공간을 인터넷에서 확보할 수가 있다.

 

바로 네이버의 클라우드를 사용하면, 돈 한푼 들이지 않고 간단하게 이미지나 영상파일을 인터넷의 서버공간에 저장할 수가 있는 것이다.

 

네이버의 클라우드는 인터넷상의 서버에 사진이나 동영상등을 저장할 수 있는 저장공간으로서, 누구든지 네이버계정만 갖고있다면, 무료로 사용할 수가 있다고 한다.

   

이전에는 네이버 N드라이브라고 불리웠는데, 다음의 저장서비스인 클라우드가 없어지니까, 네이버에서 ‘N드라이브클라우드로 이름을 변경해서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네이버의 클라우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네이버에 회원가입한 계정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네이버의 계정이 있다면, 곧바로 클라우드를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네이버에 이미 회원가입이 되어있는 분들은 지금 즉시 네이버 클라우드에 접속해서, 자신의 사진과 동영상을 네이버 클라우드에 30GB까지 저장할 수가 있다. 물론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네이버 클라우드 사용방법, 사진파일 올리는 법

   

네이버 클라우드는 한 개의 주민등록번호당 한 개의 클라우드(30GB분량)가 제공된다. 만일 네이버에 계정이 여러개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계정들이 동일한 주민등록번호로 가입된 것이라면, 한 개의 클라우드만 제공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한 개의 클라우드에는 자신의 파일을 30기가까지만 저장할 수가 있다.

 

그러면 네이버의 서버 저장공간 클라우드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자!

 

네이버에 회원가입이 된 사람은, 네이버 첫페이지에서 로그인을 한다. 그러면 네이버 사이트의 첫페이지가 열린다. 네이버의 첫페이지에서 아래와 같이 자신의 계정 아래부분에서 오른쪽에 있는 스크롤바를 클릭해서 다음메뉴가 뜨도록 한다.

 

 

아래 이미지처럼 자기계정 바로 아래부분에 있는 '클라우드'를 클릭한다.

 

 

 

'클라우드'를 클릭하면, 아래 이미지처럼 자신의 클라우드 첫페이지가 열린다. 네이버에 네 클라우드가 생겼지만, 아직 내 파일을 하나도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파일이 없다. 내 클라우드의 왼쪽 사이드부분을 보면, 사진 공간, 동영상 공간, 문서공간, 음악 공간 등 파일종류별로 올릴 수 있는 서버공간이 유형별로 나뉴어져 있다.

 

이 클라우드 저장공간 영역에 자신의 컴퓨터에 있는 사진이나 이미지, 그리고 동영상이나 문서, 음악 등 각종 자신의 파일들을 올려서 저장할 수가 있다.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파일들을 이곳으로 올려서 저장하면, 그 옮긴 파일만큼 자신의 컴퓨터공간이 더 늘어나서, 여유로와지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컴퓨터에 있는 이미지나 동영상을 네이버 클라우드로 올리려면, 아래 이미지처럼 맨 상단에 있는 '올리기'탭을 클릭해서 올리면 된다.

 

 

 

 

'올리기'탭을 클릭하면 아래와 같이 내 컴퓨터의 저장폴더 경로가 나오는데, 이폴더에서 내가 올리기 원하는 파일을 선택한 후, 열기를 클릭한다.

 

 

 

 

올릴 파일을 연 후에는, 아래처럼 네이버 클라우드의 저장할 폴더가 제시되는데, 이미지나 그림파일이면 아래처럼 '내그림' 폴더를 선택하고, 동영상파일이면 '동영상'폴더를  선택한 후에 확인을 클릭한다. 

 

 

 

여기까지가 내 컴퓨터의 이미지 파일을 네이버의 클라우드에 올려서 저장하는 과정이었다.

내 이미지파일을 클라우드에 올렸으니, 이제 내가 올린 이미지가 제대로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는지 확인해보자!

아래처럼 먼저 폴더를 클릭한 후에, 내그림을 클릭한다.

 

 

 

그림폴더를 클릭하니까, 방금 내가 올렸던 그림이미지가 내이버의 클라우드의 내그림폴더에 올라온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이런식으로 사진이나 그림 뿐만아니라, 동영상도 똑같은 방법으로 사진파일은 그림폴더에, 동영상파일은 동영상폴더에 저장하면 된다.

 

 

 

내컴퓨터의 이미지나 동영상을 이곳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이유는, 내컴퓨터의 과도한 용량을 줄이기 위해서이므로, 클라우드에 저장해놓은 파일들은 내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서 삭제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이중으로 저장해놓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컴퓨터의 디스크용량을 많이 비울 수가 있는 것이다. 내컴퓨터의 디스크에서 해당파일을 삭재해도, 그 파일을 네이버의 내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으므로, 필요할 때에는 언제든지 내컴퓨터에 다시 내려받기해서 볼 수 있다.

 

내가 클라우드에 올렸던 사진이미지를 내 컴퓨터에 내려받기 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내 클라우드의 그림폴더로 들어가서, 먼저 원하는 사진이미지를 클릭한 후에, 클라우드페이지의  상단에 있는 '내려받기'탭을 클릭한다. 그러면 페이지 맨하단에 저장하기 팝업창이 열리는데, '저장'을 클릭한다. 그러면 내컴퓨터의 '다운로드'폴더에 해당이미지가 저장된다.

 

 

해당 이미지를 내컴퓨터에 저장한 후에, 아래처럼 맨 하단에 '폴더열기 팝업창'이 열리는데, 여기서 '열기'를 클릭하면, 해당 이미지가 저장된 다운로드 폴더가 열린다.

 

 

'열기'를 클릭하면, 방금 클라우드에서 내려받기를 한 해당 이미지가 내 컴퓨터의 '다운로드'폴더에 저장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통 클라우드의 '환경설정'에서 따로 지정해주지 않는 한, 네이버 클라우드에서 내려받기한 파일은 '다운로드' 폴더에 저장된다.

 

 

 

 

내컴퓨터에 많은 동영상이나 사진파일들을 저장해놓아서, 저장공간이 부족할 경우에는, 네이버의 클라우드에 내 사진이나 동영상을 저장해놓을 수 있기 때문에, 클라우드를 사용하면 매우 편리하다.

 

네이버 클라우드는 위의 이미지에서 보듯이 올리기내려받기의 두가지 기능이 다 있어서, 내 컴퓨터의 용량이 부족할 때는 올리기를 해서 컴퓨터의 용량을 절약하고, 컴퓨터의 용량이 넉넉해지면, 다시 클라우드에 올린 파일을 내려받기 해서 내 컴에서 다시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네이버 클라우드는 파일을 저장만 해놓는 저장공간이므로, 클라우드에 저장해놓은 파일들을 수정이나 편집작업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네이버 클라우드에 저장해 놓은 파일들을 내 컴퓨터에 똑같은 가상공간을 만들어서, 내컴퓨터로 쉽게 수정하고 편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네이버 클라우드 탐색기라는 것이다.

 

네이버 클라우드를 사용할 경우에는, 별도로 네이버 클라우드 탐색기를 설치해서 사용하면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은 파일들을 올리기내려받기하지 않고 곧바로 내 컴퓨터에서 해당 파일을 수정이나 편집작업을 할 수가 있어서 편리하다.

 

네이버 클라우드 탐색기를 설치하면,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는 파일들을 모두 내컴퓨터의 지정된 폴더에 동시에 저장되어 보여지므로써, 클라우드에 접속하지 않아도, 내컴퓨터에서 그 파일의 수정이나 변경을 손쉽게 작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나까 네이버 클라우드 탐색기를 내컴퓨터에 설치하면, 네이버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는 폴더와 똑같은 이름의 폴더가 내컴퓨터에도 자동으로 저장되어서,

굳이 네이버 클라우드에 접속하지않고도, 내 컴퓨터의 해당 폴더로 들어가서 원하는 파일을 수정하거나, 변경하면, 그 수정하고 변경한 내용이 네이버 클라우드의 동일한 파일에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이버 클라우드 탐색기를 이용하면, 네이버 클라우드에 접속하지 않고도, 내컴에서 손쉽게 클라우드에 있는 파일들에 대한 수정작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내컴에서 수정한 파일과 동일한 클라우드의 파일도 수정이 저절로 이뤄지게 된다.

 

그리고 이폴더는 내 컴퓨터에서 보여지지만, 인터넷 가상공간이므로, 내컴퓨터에서 저장용량을 전혀 잠식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네이버 클라우드 탐색기 설치하는 방법

 

'네이버 클라우드 탐색기'를 내컴퓨터에 설치하기 위해서는, 네이버에 접속해서 검색창에다 '네이버 클라우드 탐색기'라고 치면, 그 검색결과 페이지 바로 아래부분에 아래 이미지처럼 '네이버 클라우드 탐색기'를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창이 나타나며, '다운로드'를 클릭한다. 

 

 

다음페이지에서 무료 다운로드를 클릭한다.

 

 

 

'동의함'에 클릭한다.

 

 

'설치하기'를 클릭한다.

 

 

'네이버 클라우드 탐색기' 설치가 완료되면, 아래처럼 내 컴퓨터에 새롭게 'N드라이브'가 생성된다. 이 'N드라이브'안에 있는 폴더와 파일들이 네이버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는 것과 똑같은 파일들이다.

 

 

이렇게 내 컴퓨터의 'N드라이브'에 들어있는 파일들을 필요할 때마다, 수정이나 변경작업을 해주면, 네이버 클라우드에 있는 똑같은 파일들도 자동적으로 수정이나 변경이 이뤄지게 된다.

내 컴퓨터의 'N드라이브'에 있는 파일을 삭재하면, 네이버의 클라우드에 있는 동일한 파일도 자동적으로 삭제된다.

 

또한 내 컴퓨터의 'N드라이브'에 있는 특정파일을 수정하면, 네이버 클라우드에 있는 동일한 파일도 자동적으로 수정된다.

그리고 반대로 네이버의 클라우드에 있는 특정파일을 삭제하거나, 변경하면, 내 컴퓨터의 'N드라이브'에 있는 동일한 파일이 삭제되거나 변경된다.

 

이것은 내 컴퓨터의 'N드라이브'와 네이버 클라우드가 서로 연동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아뭏튼 내 컴퓨터의 'N드라이브'는 네이버의 클라우드와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있으면 된다. 한쪽만 작업을 해주면, 다른쪽은 자동적으로 똑같은 작업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네이버에 일일이 로그인하고 클라우드에 접속하지 않아도, 내 컴퓨터안에 있는 'N드라이브'에서 작업을 하면, 그 작업해서 변경된 내용이 자동적으로 네이버 클라우드에 적용이 되기 때문에, 폴더나 파일관리가 훨씬 용이해진다.

그리고 이 'N드라이브'는 일종의 가상공간이기 때문에, 컴퓨터용량을 전혀 잠식하지 않고, 30GB까지 공짜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네이버 클라우드 저장용량

 

네이버 클라우드 저장소는 30기가까지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데, 그 이상을 사용하려면 유료서비스로 전환해야 한다.

 

네이버 클라우드 저장소에서 30GB를 넘어서서 100GB까지 사용하려면, 매월 5,000원의 이용료를 납부해야 하며, 만일 1테라까지 사용하려면 매월마다 1만원의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만일 네이버 클라우드에 저장해야할 파일들이 많고 용량이 크다면, 편법을 써서 30GB를 넘게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네이버 클라우드는 한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당 30GB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한 사람이 3개의 계정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주민등록번호로 가입했으므로 클라우드에서 허용하는 용량은 30GB뿐이다.

 

그러나, 가족이 있을 경우에는 내 배우자와 내 자녀가 있다면, 그들의 주민등록번호로 네이버에 가입한다면, 나를 포함해서, 3개의 주민등록번호로 3개의 계정이 주어지므로, 네이버 클라우드도 3개를 사용할 수가 있게 되며, 이 경우 총 90GB까지 클라우드 용량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가족이나 배우자, 형제의 네이버클라우드를 사용함으로써, 클라우드 사용용량을 100기가 부근까지 늘려놓을 수가 있다.

 

네이버의 클라우드 저장소를 사용하셔서 내 컴퓨터의 저장공간을 절약하시기 바란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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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룡 영화 사진, 공룡의 종류, 티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콥스 크기와 몸길이

 

백악기시대의 한반도의 공룡의 종류 - 타르보사우루스, 프로토케라톱스, 테리지노사우루스, 부경고사우루스, 친타오사우루스, 익룡

   

8천만년 전의 아시아지도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대륙이 하나의 대륙으로 붙어있었다고 하며, 타르보사우루스, 티라노사우루스, 프로토케라톱스 등의 공룡들이 중국과 한반도를 제집 드나들 듯이 드나들고 있었다고 한다.

 

한반도의 남쪽지역에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호수가 있는 지역에서 수많은 공룡들이 먹이다툼을 벌이면서, 함께 서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8천만년 전 한반도는 공룡들의 천국이었다고 한다. 8천만년 전 백악기 후기의 시대에 한반도는 타르보사우루스가 한반도 공룡중에서 제왕노릇을 하고있었다. 

 

 

맑고 깨끗한 호수와 온화한 기후와 우거진 수풀 때문에 한반도에는 공룡들이 특히 많이 서식했던 공룡들의 천국이었다고 한다.

 

얼굴에 반점이 가득찬 점박이는 태어난지 2개월밖에 안된 어린 새끼공룡인데, 몸길이 70cm밖에 안된 어린 공룡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 어린 새끼공룡은 백악기시대때 한반도 공룡시대때 공룡들의 제왕노릇을 하던 타르보사우르스의 혈통이라고 한다.

 

  타르보사우루스

 

8,000만년전 이시기에는 프로토케라톱스같은 초식공룡들도 한반도에 많았는데, 프로토케라톱스의 무리는 호수 주변의 숲속에서 살면서, 종종 물을 마시러 호수주변으로 집단을 이뤄서 나타나곤 했었다.

 

프로토케라톱스는 몸길이 1.52m에 몸무게는 200kg의 중소형의 크기로 주로 풀과 나뭇잎을 먹고사는 초식공룡이었는데, 지금의 멧돼지와 비슷한 습성을 지닌 공룡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의 프로토케라톱스들이 숲속에서 나와 호수로 다가가서, 물을 마시면서 갈증을 해소하고 있었을 때, 숲속에서 거대한 크기의 육식공룡 한 마리가 갑자기 뛰쳐나와 초식공룡인 프로토케라톱스를 단숨에 목을 물러죽였다.

 

초식공룡을 순식간에 물어서 죽인 육식공룡은 얼굴크기만 해도 1.5m에 달하고 몸길이는 13m에 달하며, 몸무게가 7톤에 달하는 타르보사우루스로, 중생대시절 한반도의 공룡중에서, 최고의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던 공룡의 제왕이라고 한다.

 

 

8.000년전 한반도의 숲속을 무시무시한 잇빨을 휘두르며 주름잡고 다녔던 최고의 포식자 타르보사우루스는 당시 한반도 숲속에서 가장 센 공룡포식자로 군림했다고 한다. 지금의 아프라카 사자급의 가장 무서운 맹수공룡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점박이는 그 혈통이 최고의 포식자인 타르보사우루스의 핏줄을 이어받았지만, 현재는 2개월밖에 안된 새끼공룡으로 자신을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어리고 나약한 점박이가 숲속에서 놀고 있을 때에 갑자기 숲속의 야비한 사냥꾼 벨로키랍토르무리가 나타났다.

 

 

2m 크기의 벨로키랍토르는 무리를 지어서 약한 초식동물을 집단으로 사냥하는 약삭빠른 육식공룡이라고 하며, 먹이가 될 만한 동물이 보이기만 하면, 무리가 집단으로 달려들어 사냥해서, 먹이감으로 삼고마는 숲속의 교활한 사냥꾼이라고 한다. 벨로키랍토르는 그 생태가 지금의 하이에나와 매우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한다.

 

새끼공룡 점박이 앞에 갑자기 베롤키랍토르 무리가 나타났으며, 자기보다 약한 동물들을 집단으로 공격해 도륙내는 벨로키랍토르의 눈에는, 비록 타루보사우루스의 혈통이라고 하지만, 2달밖에 안된 점박이는 한입 먹거리에 지나지않았다.

 

배가 고팠던 벨로키랍토르는 새끼공룡 점박이를 보자마자, 한입에 잡아먹을 것처럼 달려들었고, 깜짝 놀란 점박이는 죽어라고 도망쳤는데, 벨로키랍토르에게 쫒겨서 달아나던 새끼공룡 점박이는, 가까스레 나무구멍속으로 숨어들어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렇지만 나무구멍의 입구를 비열한 사냥꾼 벨로키랍토르가 가로막고 지키고 있어서, 탈출할 수도 없는 매우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타르보사우루스의 새끼 점박이

 

그런데 갑자기 쿵쿵 소리를 내면서 거대한 몸집의 공룡 타르보사우루스가 그곳에 나타났는데, 6톤이 넘는 육중한 덩치의 이 타르보사우루스는 바로 새끼공룡 점박이의 어미였다. 

자신의 새끼 점박이의 다급한 울음소리를 듣은 어미 타르보사우루스가 새끼를 구하기 위해서, 호숫가에서 숲속으로 쏜살같이 달려온 것이다. 

 

자신의 새끼인 점박이를 구하고 나서, 더욱 예민해진 어미 타르보사우루스는 숲속을 정찰하던 중에, 한창 나뭇잎을 따먹고있는 테리지노사우루스를 발견했다.

 

  테리지노사우루스

 

자신의 순찰구역의 한쪽에서 나뭇잎을 먹고있던 테리지노사우루스를 본 타르보사우루스는 무섭게 노려보며 맹렬하게 포효했다.


테리지노사우루스는 초식과 육식을 같이 하는 초식공룡이면서 동시에 육식공룡인데, 평소에는 나뭇잎 같은 식물류를 먹는 습성이 있지만,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 종종 다른 동물을 공격해 잡아먹기도 한다. 

테리지노사우루스는 7톤에 달하는 거대한 몸매와 70cm가 넘는 세 개의 손톱은 공룡의 제왕 타르보사우루스에게도 치명상을 안겨줄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를 갖고 있다고 한다.

 

 

타르보사우루스도 자신만큼 큰 덩치를 갖고있는 테리지노사우루스에게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하고, 단지 위협만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어미 타르보사우루스에게는 새깨가 딸려있기 때문에, 서로간에 약간 신경전만 벌이고는 서로간에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멀어지고 말았는데, 서로 목숨걸고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시기에 한반도에는 또다른 거대한 크기의 공룡이 서식하고 있었는데, 바로 부경고사우루스가 그것이다.

 

부경고사우루스는 백악기의 대표적인 초식공룡으로 몸길이가 자그만치 20m나 되는 그당시 공룡중에 가장 큰 몸집을 자랑하는 초식공룡으로 주로 호숫가에 서식하면서 풀잎이나 수초를 뜯어먹고 살아가는 초식공룡인데, 지금의 기린과 비슷한 습성을 가진 공룡이다.

 

  두경구사우루스

 

목이 기린보다 훨씬 더 긴 이 공룡은 부산의 부경대학교 발굴팀에서 최초로 그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부경고사우루스라는 이름이 주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시기에 한반도에는 초식공룡 친타오사우루스가 있었는데, 이 친타오상루스는 몸길이 10m에 몸무게 4톤이나 되는 중형급 공룡이다. 친타오사우루스는 건기 때마다 집단으로 한반도를 찾아오는 등, 집단대이동을 하는 초식공룡으로 오늘날의 누우들과 습성이 매우 비슷한 공룡이라고 한다.

 

 익룡

 

또한 이시기에 한반도에는 익룡들도 존재했는데, 해남군 우학리에서 그 화석이 발견된 익룡이 있으며, 이 익룡은 날개와 물갉퀴가 달려있는 익룡으로 날아다니다가 호수나 물가에 내려와서, 물갈퀴로 헤엄치면서 물고기를 잡아먹는 습성을 지닌 익룡이다.

   

일주일째 굶었던 새끼공룡 세 마리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서, 어미공룡 타르보사우루스가 먹이사냥을 위해서, 새끼들을 방치하고 멀리간 사이에, 숲속의 약탈자인 벨로키랍토르들이 나타났으며, 새끼공룡들을 잡아먹기 위해서 공격을 해왔다.

 

벨로키랍토르

 

그리고 막내 한 마리가 벨로키랍토르에게 물려서 죽임을 당한 후 벨로키랍토르의 먹이감이 되어버렸고, 나머지 새끼공룡인 점박이와 형제는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과연 어린 새끼공룡 점박이는 이같은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성체공룡으로 자라날 수가 있을 것인가?

 

결국 새끼공룡 점박이는 이같은 역경과 위기를 모두 극복하고, 무사히 성체 타르보사우루스로 자라날 수 있었다고 하며, 이 숲속에서 모든 공룡들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다스렸던 공룡황제 티라노사우루스 애꾸눈에 도전해서, 그를 완벽하게 꺾어버리고 새로운 공룡의 제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프로토케라톱스

 

그런데 이같은 타르보사우루스와 티라노사우루스간의 싸움은 어디까지나 영화에서 만든 설정이며, 두 무시무시한 공룡들은 서로 만날 일이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타르보사우루스는 백악기의 공룡이지만, 티라노사우루스는 쥬라기시대의 공룡이기 때문에,

서로간에 만날 수가 없었던 것이며, 쥬라기시대에 가장 포악한 육식공룡이었던 티라노사우루스는 타르보사우루스의 형질을 물려받은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몸길이 12m~15m로 타르노사우루스만큼 거대한 덩치를 지녔고, 6700만년전 ~ 6500만년전 백악기후기에서 쥬라기시대에 살았던 육식공룡으로 타르노사우루스의 후손으로 알려지고 있다. 

 

  티라노사우루스

 

티라노사우루스는 몸무게가 7~9톤까지 나가는데, 당시 육식공룡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면서, 초식공룡은 물론 눈에 보이는 육시공룡들도 자신의 먹이감으로 삼았을 만큼, 숲속의 황제로 군림했던 무시무시한 육식공룡이다.

 

잇빨의 길이만 30m나 되며, 잇빨이 날카롭고 길어서 한번 먹이감을 물면, 절대로 빠져날 수 없었다고 한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의미처럼 폭군도마뱀또는 폭군공룡이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엄청 포악하고 뛰어난 사냥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당시 초시공룡이었던 200kg의 트리케라톱스를 즐겨 사냥했다고 알려졌는데, 티라노사우루스의 악력(무는힘)은 오늘날 사자의 악력보다 무려 15배나 더 강해서, 트리케라톱스를 물어서 척추뼈를 으스려뜨릴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타르보사우루스

 

1902년에도에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의 머리뼈크기만 15m나 되며, 잇빨크기도 30cm나 되기 때문에, 한번 먹이감을 물면 몸통의 뼈를 부수고 몸을 두동강내서 잡아먹었다고 한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덩치가 큰 개체는 9톤이나 되는데, 오늘날 백수의 왕 사자는 상대도 되지않을 정도로, 엄청난 파워와 사냥실력을 지니고 있어서, 당시 공룡시대에서 최고의 포식자이자, 황제로 군림했던 가장 무서운 육식공룡으로 명성을 떨쳤다.

 

타르보사우루스와 티라노사우루스를 비교해보면, 덩치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더크고 몸무게도 더많이 나간다.

타르보사우루스의 몸길이는 10~12m에 몸무게는 5톤 정도 나가는데 비해, 티로노사우루스는 13m 길이에 몸무게는 7~9톤까지 나가므로, 타르보사우루스보다 분명 티라노사우루스가 훨씬 더 크고 거대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영화 한반도의 공룡에서는 타르보사우루스와 티라노사우루스가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함께 서식하면서, 서로 만나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타르보사우루스와 티라노사우루스가 서로 만날 일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두 공룡은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고, 사는 지역도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타르보사우루스는 몽고와 만주, 그리고 한반도에서 살았지만, 티라노사우루스는 주로 아메리카대륙에서 살았으며, 한반도에서는 서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타르보사우루스가 티라노사우루스보다 더 앞선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두 공룡이 타임머신을 타지않는 한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타루보사우루스와 티라노사우루스가 당시대에 있어서 최고의 포식자이며, 가장 포악한 육식공룡이었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타루보사우루스는 8000~7000만년전에 서식했고, 티라노사우루스는 6700만 년 전 ~ 6500만년전에 서식했으므로, 타루보사우루스가 조상격이고, 티라노사우루스는 타루보사우루스의 후손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일 타로보사우루스와 티라노사우루스가 실제로 만나서 공룡의 제왕자리를 놓고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지금의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만큼 흥미진진했을 것이다.

 

두 공룡이 싸운다면, 티라노사우루스가 이겼을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티라노사우루스가 타르보사우르스보다 몸무게가 2~3톤 정도 더 많이 나가고 더 크기 때문이다. 표범과 사자가 싸운다면, 싸움실력은 비슷하지만, 덩치가 훨씬 더 큰 사자가 이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반도에서는 백악기를 지나 쥬라기까지 공룡들이 계속 서식하다가, 6500만년전 지구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난 후에 멸종되어 버렸고, 한반도에서 최초로 인류가 나타나게 된 시기는 공룡시대로부터 한참 후인 약 80만년 전부터라고 한다.

     

80만년 전에 비로소 한반도에 호모에릭투스라고 하는 최초의 인류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들 호모에릭투스는 만주와 한반도에서 구석기문화를 이끌어나갔던 구석인들이었지만, 우리 한국인의 직접 조상은 아니며, 이들은 아시아대륙을 끝없이 유랑하면서 살아갔던 유랑종족들이라고 한다. 

 

 

한반도 공룡시대 동영상

 

 

 

 

 

 

 

 

 

 

 

 

 

 

 

 

티라노 사우르스의 사냥동영상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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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강의 파이터 극진가라데 최배달, 료마 톰라이스의 실전대결, 무도여행

  

최영의 1923~1994

 

최배달은 조선인출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전국의 무도인들과 목숨을 건 무술대결을 펼쳐서, 승리를 거두었던 실전무도의 일인자이다.

 

최배달 같은 실전무도가는 앞으로 나오기도 힘들 뿐만아니라,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하는 진정한 무술영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일본가라데계를 실전무술로 평정했으며, 미국, 중국, 남미, 아시아에 있는 수많은 무술강호들과 대결을 펼쳐 모두 쓰러뜨림으로써, 50~60년대 당시 세계최강의 무도가임을 실전무술을 통해서 증명해보였던 탁월한 무도가였다.

 

최배달은 16세때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으로서일본 타쿠쇼쿠대학을 다닐 때부터 가라데에 입문했는데최배달이 수련했던 가라데는 일본의 유서깊은 송도관가라데였으며이후 그는 강유류 공수도도 함께 수련했으며 1942년도에 가라데 공인 4단을 획득했다고 한다.

 

 

그런데 최영의는 일본인들에게 행패를 부리던 미국인병사들을 두들겨패준 것 이 원인이 되어 지명수배령이 내려지자, 기요즈미산으로 올라가 입산수도하면서 뼈를 깍는 듯한 혹독한 훈련을 통해서, 자신의 가라데무술을 더욱 완성시켜 나갔다.

 

기요즈미산에서 1년 동안 혹독한 훈련을 하면서 최영의는 자신의 무술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나갔는데,

그는 기요즈마산 속에서 발차기로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훈련과 계곡에 있는 차돌을 당수와 주먹으로 쳐서 깨뜨리는 훈련, 그리고 손가락만으로 물구나무서기 하는 훈련등을 반복적으로 실행하면서, 자신의 주먹과 발을 강철보다 더 단단한 무기로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젊은시절의 최영의 사진

 

최배달은 자신의 가라데무술을 완성시키고 난 뒤, 일본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가라데고수들에게 도전하게 되는데, 이른바 도장깨기무도여행을 시도한다.

 

최영의는 일본의 수많은 가라데실력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도전장을 던졌고 그들과 대결을 펼쳤으며, 싸우는 족족 일본 가라데고수들을 모두 쓰러뜨렸다고 한다.

최영의가 일본의 난다긴다하는 전국의 가라데고수들에게 도전을 해서, 모두 다 꺾어버림으로써, 명실상부한 일본 최고의 파이터임을 증명해보였다고 한다.

 

일본 역사상 아니, 세계역사상 이렇게 한명의 무술인이 나라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무도가들과 실전대결을 펼친 것은 아마도 최영의가 최초일 것이며, 더욱이 200200승을 거둔 최배달의 대결기록은 영원히 깨지질 않을 것이다.

 

 

최배달(최영의)은 일본의 가라데고수들과 대결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남미, 중국 유럽등 세계의 명망높은 무도가들을 찾아가서, 실전대결을 펼쳤다고 한다.

 

일본의 가라데계를 평정했던 최영의는 일본에서 더 이상 적수가 없자, 미국, 프랑스, 브라질, 그리고 중국 등 세계의 여러나라들을 돌아다니면서 이름높은 무도가들과 무술대결을 펼쳤고, 그들을 모두 꺾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최배달이 갑자기 일본에서 도장깨기에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점잖은 신시였던 최영의가 갑자기 일본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도장깨기에 나선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최영의는 1948년도 26세의 나이에 전일본가라데선수권대회에 출전해서,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고 한다.

그런데 최배달(최영의)은 당시 일본에서 최고의 유망주로 각광을 받았던 난바와의 결승전대결에서 대결을 펼쳐서 그를 ko시켜버렸지만, 최영의는 난바와 공동우승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 이유는 당시 일본가라데선수권대결에서는 실전대결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영의가 난바를 ko시킨 것은 규정에 어긋났기 때문에, 결국 최영의는 상대를 쓰러뜨리고도 공동우승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영의는 실전대결이 아닌 형식주의를 지향하는 일본가라데계의 오래된 관행에 심한 염증과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인출신이 일본가라데선수권대회에서 우승자로 뽑히자,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조롱과 야유가 따라다녔다고 하며, 심지어는 최배달(최영의)에게 도전하는 일본무도가들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이같은 비아냥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위해, 그리고 최배달(최영의)은 자신의 실전 무도철학을 증명해보이기 위해서, 일본전역의 가라데도장을 찾아다니면서, 수많은 가라데고수들과 대결을 펼치는 도장깨기무도여행을 실행해나가게 된 것이다.

 

 

최영의는 일본의 유서깊은 송도관가라데의 나조십걸로 불리우는 송도관가라데 10명과 대결을 펼쳐서, 그들을 군말없이 모두 쓰러뜨렸으며, 마쓰이부관장을 복부차기로 ko시켜버림으로써, 송도관가라데계를 쑥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최영의는 그후에도 일본가라데계에서 명망높은 실력자인 사카하라, 마쓰이, 모리 등 가라데고수들을 계속해서 쓰러뜨리면서, 자신의 명성을 드높여나갔다.

 

최배달은 총 200번을 싸웠으며 200승을 거뒀다고 한다. 이중에 딱 한번 최영의가 무승부를 거뒀던 대결이 하나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중국의 태극권의 고수 진노인과의 대결이 그것이라고 한다.

 

최영의는 중국에 태극권의 고수이자 최고의 쿵푸실력자 진노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를 찾아가서 실전대결을 제의했다고 한다.

 

최영의와 진노인간의 대결이 펼쳐졌는데, 최영의가 발차기공격과 정권치기 공격을 여러차례 퍼부었지만, 왠일인지 진노인이 아주 유연한 몸놀림으로 최영의의 공격을 이러저리 피해나갔다고 한다.

 

 

결국 최영의의 계속된 공격이 진노인의 유연한 몸동작으로 인해 모두 무위가 되어버렸다고 하며, 진노인은 최영의의 계속된 공격에도 전혀 타격을 받지않았고, 오히려 최영의가 공격하다가 지쳐버렸으며, 결국 두사람의 대결은 승부를 보지못하고 끝나고 말았다고 한다.

 

최영의는 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공격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상대를 만나서 고전하게 되었는데, 최영의는 진노인과의 대결에서 승부가 나지 않았지만, 자격지심으로 진노인과의 대결에서 패배했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이같은 이야기가 전해져서 최영의가 진노인에게 패배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지만, 최영의는 나중에 자신이 진노인에게 패배한 것이 아니라, 승부를 보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가 있다.

 

최영의의 수많은 무술대결 중에서 가장 위험했고 가장 치열했던 명승부를 꼽자면, 검객 료마와의 대결과 무사시노벌판의 대결, 그리고 톰 라이스와의 대결을 꼽을 수가 있다.

 

최배달의 일생일대의 가장 치열했던 명승부인 검객 료마, 무사시노의 130의 대결, 그리고 톰 라이스와의 대결을 살펴보도록 한다.

 

 

최배달과 검객 료마의 대결

 

최배달은 수많은 일본무도가들과 싸워서 승리를 거뒀지만, 그에게 가장 위험하고 치열했던 명승부는 뭐니뭐니해도 칼잡이 검객 료마와의 대결을 꼽을 수가 있다.

 

검귀라는 별명을 가진 칼잡이 료마는 검도 7단의 고수로서, 그의 검술실력을 일본검도계에서도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뛰어난 검술실력을 지니고 있는데, 그가 휘두른 칼에 단 한방이라도 맞는다면, 최영의는 그대로 목숨이 달아날 수도 있는 대결이었다.

 

 

최배달(최영의)는 검귀 료마로부터 도전을 받았다고 하며, 검귀 료마와의 대결로 인해서 최영의는 일생일대의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검도 7단의 고수 료마가 휘두른 칼날을 한방이라도 맞기라도 하면,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최영의라도 치명상을 입고마는 것이다.

 

칼잡이와의 대결은 다른 무도가들과의 대결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그냥 한방의 칼날에 목숨이 달아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냥 무술대결에서 지고이기는 문제가 아닌, 죽느냐 사느냐의 대결인 것이다.

 

최영의는 검객 료마와의 대결을 덤덤하게 받아들였으며, 죽을 결심을 하고서는 료마와의 대결장소로 정해진 아오야마묘지로 나갔으며, 칼을 들고있는 료마와의 대결을 시작했다.

 

검귀 료마는 최배달을 보자마자, 칼을 빼들고서는 최배달에게 달려들어 날카로운 칼날을 몇 번 휘둘러댔다.

그러자 최배달(최영의)의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또다시 료마가 칼을 내리치자 최영의는 신속하게 뒤쪽으로 피해버렸는데, 이번에도 최영의의 등쪽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검객 료마로부터 두번의 공격을 받았을 뿐인데도, 최영의는 옆구리와 등부분에 심한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게된 것이다.

 

 

이제 최배달(최영의)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을 해야만 하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되었다. 더 이상 료마의 칼공격을 받다가는 생명을 읽게될 수 있기 때문에, 항복을 하고 생명을 건지던가,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 끝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던가 말이다.

 

그렇지만 최영의는 끝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쪽을 택했다고 한다.

 

명예와 자존심이 강했던 최배달에게는 패배나 항복은 죽기보다 싫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최영의는 검객 료마와의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한다고 해도, 자신의 명예만은 건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료마는 자신의 두 번의 공격으로 최영의가 상처를 입게되자, 회심의 미소를 흘리면서, 더빨리 싸움을 끝내겠다는 의지로 또다시 자신의 칼을 휘둘러왔다.

최배달(최영의)은 주변에 있는 나무와 바위 같은 지형지물을 최대한도로 활용해서, 료마의 칼공격을 이리저리 피해다녔다고 한다.

 

 

계속해서 뒤로 밀리던 최영의는 더 이상 자신을 가려줄 나무와 지형지물이 없는 벌판으로 몰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최영의는 료마의 칼공격을 막아줄 개체도, 더 이상 피해버릴 곳도 없는 지경에 몰린 것이다.

 

순간 최배달(최영의)의 머릿속으로 이런 영감이 스치고 지나갔다고 한다. 맨손잡이가 칼을 든 상대방과의 대결에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상대는 검도 7단의 고수가 아닌가!

 

최영의는 상대방의 칼공격을 역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료마에게 차라리 자신의 왼쪽팔을 내어주고, 오른쪽팔로 료마의 급소를 공격해 쓰러뜨리는 전법을 구상했던 것이다.

 

료마의 칼공격을 더이상 피해버릴 방법이 없어진 상태에서, 최영의는 목숨을 건 최후의 선택을 한 것이다.

한쪽팔을 내어주고 다른쪽팔로 복부를 공격하라료마의 칼공격이 날아드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최영의는 이런 판단을 내렸던 것이고, 곧이어서 료마의 또다른 칼공격이 이어졌다.

 

료마는 자신의 칼로 위에서 아래로 그대로 내려쳤으며, 료마가 칼을 최영의에게 내리치는 순간, 최영의는 두손으로 합장하면서 료마의 칼을 잡아버렸다고 한다.

료마가 워낙 힘차게 칼을 내려쳤기 때문에, 최영의가 두손으로 붙잡았던 칼은 그대로 최영의의 왼쪽어깨에 찍혀버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료마가 내리친 칼은 최영의의 두손에 의해 붙잡힌 상태로 최영의의 왼쪽어깨에 박혀버린 것이다. 그리고나서 최영의는 오른쪽주먹을 그대로 료마의 명치에 꽂아넣었다고 한다.

 

최영의의 어깨에 칼을 내리꽂았던 료마가 순간적으로 방심한 사이에, 최영의의 오른쪽펀치가 정확하게 료마의 명치에 꽂혔으며, 료마는 최영의의 강펀치 한방을 맞고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맨손의 최영의가 장검을 가진 검도 7단의 고수를 펀치 한방으로 쓰러뜨렸던 것이다. 그런데 료마는 최영의의 강펀치에 맞는 순간 내장이 파열되어 그대로 숨을 거뒀다고 한다.

 

최배달은 오직 맨손만으로 칼을 가진 검객 료마를 군말없이 ko시켰을 뿐만아니라, 본의 아니게 그를 즉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최배달은 검객 료마를 승부 끝에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그후 관동가라데의 명인 가네토라와 대결에서 승리한 후에, 좌절감에 빠진 가네토라가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또다시 일어나자, 최영의는 크게 낙심하게 되었고, 절망감과 회의감에 빠져서, 수개월동안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 일을 겪고난 후에, 최배달은 다시 심기일전하기 위해서, 또다시 가나가와현에 있는 하코네산에 올라 두번째 입산수도 훈련을 실시하게 된다.

 

첫번째 입산수도훈련에서는 살기(殺氣)를 터득하기 위해서 실행되었다면, 두 번재 입산수도훈련은 살기가 아닌, 자기 스스로의 극기(克己)를 위한 훈련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남을 이기기 위한 훈련이 아닌, 자신을 이기기 위한 수양의 성격이 강한 훈련이었던 것이다.

 

무사시노벌판의 130명의 대결

 

최배달(최영의)이 두 번째 입산수도훈련을 마치고, 하코네산에서 내려오자 마자, 최영의에게는 또다른 큰 위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하코네산에서 내려온 직후에, 일본정통 가라데무도인들이 연합해서, 최영의에게 도전장을 보내왔던 것이다.

 

, 일본의 내노라하는 정통가라데고수들 30명이 연합체를 결성해서, 단체로 최배달 한사람에게 대결을 신청했다고 한다. 정말 비열하고 졸열한 일본 무도인들의 야비한 수작이 아닐 수가 없다.

 

가라데명문가의 가토 7단을 위시로해서, 오키나와의 가라데고단자 10, 그리고 어전유도대회 우승자 7, 또한 검도유단자 8명이 포함되어 있는 전일본 정통무술인들이 연대한 연합대표무도가들 32명이 단체로 최배달 한사람에게 공개도전장을 던졌다고 한다.

 

 

아무리 최배달이 뛰어난 무도가라고 하더라도, 일반인이 아닌 일본무도계에서 뛰어난 실력자들만을 모아놓은 일본무도가대표 32명이 한꺼번에 최영의 한사람을 상대로 도전한다는 것은, 너무 야비하고 비겁한 짓이 아닌가?

 

그것도 최영의가 거절하지 못하도록 여러 신문사에도 알리면서,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던졌다고 한다. 정말로 섬나라 왜인들의 비열하고 야비한 근성이 여지없이 표출된 것이다.

 

이런 말도되지 않는 일본무도가대표 32명의 대결신청을 최배달이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도 결코 최영의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런데 최배달은 일본무도가대표 32명의 도전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번에 최배달에게 도전장을 던진 일본무도가대표 32명 중에는 검도유단자가 8명이나 끼여있었다고 한다.

도저히 승산이 없는 이런 무모한 대결을 신청한 밀본무도가들도 한심하기 그지없지만, 최배달은 기꺼이 이같은 무모한 대결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서 큰 놀라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칼을 든 검객 8명이 포함된 32명의 일본무도가 고수들과 최배달 한명의 기가 막히는 싸움이 실제로 벌어졌다고 한다.

 

무사시노벌판에서 벌어진 최영의와 일본무도가들의 132의 대결에서 최배달은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고 한다.

132의 대결은 마치 권총 하나로 탱크와 맞서 싸우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승산이 절대 없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인 것이다.

 

그런데 도전장을 받았던 최배달은 약속된 날에 싸움장소인 무사시노들판으로 갔다고 한다.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대결을 벌이기 하루 전날, 최배달은 이 무사시노벌판에 답사를 왔었다고 한다. 최배달은 130의 대결이 벌어질 무사시노벌판에 미리 와서, 이곳의 지형지물을 면밀하게 파악해놓았다고 한다.

 

최배달이 무사시노벌판에 미리 답사를 온 것은, 이 곳의 지형지물을 최대한도로 활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싸움환경으로 삼기 위해서라고 한다.

 

실제로 최배달은 일본무도가대표 32명과의 대결에서, 무사시노들판에 있는 갈대숲과 연못과 나무숲을 최대한도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데 사용했으며, 최배달이 일본무도가대표들과 대결에서 그들의 절반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고 한다.

 

최배달은 대결이 벌어지는 무사시노벌판에 일부러 약속시간보다 늦게 나타남으로써, 일본무도가대표들의 마음을 한없이 초조하게 만들고, 평정심을 잃게 만들었다.

 

그리고 최배달은 무사시노벌판에서 일본무도가대표을 보자마자, 나무와 숲이 많은 지역으로 그들을 유도했다고 하며, 일본무도가대표들의 사이드부분부터 차례로 격파해나갔다고 한다.

 

 

최배달은 일본무도가대표들의 오른쪽부분으로 달려들어서, 발차기위주의 공격을 펼쳐서, 여러명의 무도가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렸다고 한다.

 

그런 후에 최배달은 일부러 달아나는 척하면서, 그들을 따라오게 유도했으며, 나무숲 사이의 좁다란 협로로 그들을 유인해서,

일본무도가대표들이 한꺼번에 포위공격을 하지못하도록 했으며, 좁다란 협로에서 쫒아오는 일본무도가들을 정권치기와 발차기로 차례차례로 쓰러뜨려나갔다고 한다.

 

커다란 두 개의 나무사이의 좁다란 협로에 우뚝 서서 달려드는 일본무도가들을 하이킥과 복부킥을 꽂아넣어서 그들을 쓰러뜨렸나갔는데, 최배달의 강력한 킥공격과 강펀치를 맞았던 일본무도가들은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다.

 

또한 최배달은 일본무도가들이 공격을 해오면, 수풀속으로 숨어버렸으며, 다시 수풀속에서 나오면서 발차기공격을 펼쳐서 그들을 쓰러뜨렸고, 또다시 수풀속으로 숨었다가 뛰쳐나오면서 공격하는 등 매우 지능적인 전법을 구사했다고 한다.

 

이런 최배달의 신출귀몰한 공격으로 일본무도가들은 15명이상이 이미 쓰러졌다고 하며, 이제 최배달이 상대해야할 적군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수십명이 집단으로 공격해도 최배달 한사람을 제압하지 못하자, 초조해진 일본무도가들은 자신들의 히든카드인 8명의 검객들을 전면에 배치해서, 최영의에게 압박해 들어왔다고 한다.

 

검객 료마를 꺾었던 전력이 있던 최배달이었지만, 이제는 검객이 8명으로 불어나 있었으니, 도무지 승산이 없는 대결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최영의는 하루전날 미리 이곳으로 와서 지형지물을 충분히 익혀놨는데, 최영의는 재빨리 갈대숲쪽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무사시노벌판의 갈대숲에 있는 갈대들은, 그 키가 사람키 만큼 컸고, 그 갈대숲은 범위가 넓기 때문에, 사람이 숨기에는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최배달은 그 키큰 갈대숲속으로 사라져버렸으며, 일본무도가들은 광할한 갈대숲속에서 최배달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십수명의 일본무도가들이 최영의를 찾기위해서, 갈대숲 이곳저곳을 헤메고 다녔지만, 워낙 그곳의 갈대숲은 범위가 엄청나게 넓었으므로 최배달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사이 최영의는 갈대숲의 한쪽 깊숙한 곳에 앉아서 지친몸과 마음을 풀고, 쉬식을 취하고 있었다.

 

수십분간 일본무도가들은 최배달을 찾아다녔지만, 그를 찾지못하게 되자, 그들은 마침내 갈대숲에 불을 놓아서 갈대숲을 태워버렸다고 한다.

 

 

일본무도가들은 최배달을 찾기위해서, 갈대숲 이곳저곳에 불을 질렀으며, 갈대들이 점점 불에 타서 없어져버리자, 최영의는 연못이 있는 갈대숲 가장자리로 뛰어갔으며, 결국 최영의는 연못속으로 숨어들어갔다고 한다.

 

일본무도가들이 계속해서 불을 놓은 바람에, 갈대숲 전체가 불에 타버렸지만, 연못속에 숨은 최배달은 끝내 발각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최배달은 연못속에 완전 잠수한 상태에서 갈대대롱을 입에 물고서, 그 대롱으로 숨을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갈대숲 전체를 모두 태워버린 일본무도가대표들은 연못근처에 와서 찾아보았지만, 최영의를 발견하지 못한 채, 다시 다른지역으로 이동해버렸다고 한다.

 

일본무도가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멀리 떨어지자, 그 틈을 이용해 물속에 있던 최영의는 잽싸게 물밖으로 기어나왔고, 있는 힘을 다해서 다른 지역으로 뛰어갔으며, 마침내 무사시노벌판을 탈출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한다.

 

무사시노들판에서 벌어진 최영의와 일본 무도가연합대표간의 132의 대결에서 최영의는 절반의 승리를 거두는 성과를 낸 것이며, 32명의 일본무도가대표단은 단체로 최영의를 공격하고도, 절반의 희생자를 발생시켰을 뿐. 최영의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도 못했던 것이다.

 

결국 무사시노벌판의 132의 대결은 최배달이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최영의 한사람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일본정통무도가들은 가라데, 유도, 검도 등 여러분야의 무술고단자들을 총동원하고도서, 최영의에게 15명이 넘는 희생자만 발생시켰을 뿐이며, 최영의를 끝내 쓰러뜨리지 못했다.

 

이 무사시노의 대결로 인해서, 혼자서 용기있는 맞섰던 최배달은 더욱 명성이 높아지게 되었으며, 일본정통 무도가연합체는 평생 씻을 수 없는 비겁자들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되었다.

 

최배달 한사람을 잡기 위해서 각개의 무술고단자 32명을 동원해서 출동했던 일본무도가연합대표들은 일본언론과 매스컴으로부터 실랄한 비판을 받았다고 하며,

더이상 최배달을 공격할 명분이 사라져버린 일본정통무도가들은 더이상 최배달에게 도전하지 못하고, 최영의의 탁월한 무술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최배달은 용기있는 행동으로 인해서, 절대절명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으며, 오히려 자신의 명성을 더욱 드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최배달 대 톰 라이스의 대결

 

최배달의 실전대결 중에서 유명한 대결이 바로 프로레슬러인 톰 라이스와의 대결이다.

 

몸무게 100kg이 훨씬 넘는 거대한 체구의 톰 라이스는 1950년대에 영국 헤비급레슬링챔피언을 지낸 완력과 펀치력이 대단한 레슬러로서, 링위에 올라가면 엄청나게 포악해져서, 잔인하게 상대선수들을 두들겨팬다고 하여, ‘붉은전갈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톰 라이스는 1950년대 중반경 일본에서 가장 위대한 레슬러로 군림했던 역도산과 대결을 펼쳤는데, 경기에서 역도산을 무참히도 두들겨패고,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은 장본인이다.

그 이전 경기까지 역도산은 무패의 전적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승승장구했었는데, 역도산에게 최초로 패배를 안겨다준 선수가 바로 톰 라이스라고 한다.

 

  커다란 덩치에 외모자체가 험상궂게 생긴 톰 라이스는 링위에서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는 링위의 무법자였다

 

톰 라이스는 레슬링경기에서 레슬링기술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펀치를 휘두르기를 더 좋아하는 선수인데, 그가 휘두른 펀치에 맞고 ko패당하는 레슬러들이 수없이 많았으며 링위에서 난폭하고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은 레슬러였다고 한다.

 

톰 라이스의 펀치는 쇠망치처럼 강력했다고 하며, 그의 강펀치에 천하의 역도산도 무릎을 끌고만 것이다. 톰 라이스는 원래 헤비급복서 출신이었기 때문에, 강력한 원투펀치기술과 막강한 펀치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톰 라이스는 워낙 성격이 난폭해서 헤비급복서로 활동하던 시절에, 판정을 잘 못했다는 이유로 레프리를 두들겨패는 행패를 부려서, 영국헤비급선수에서 제명당했다가, 헤비급레슬러로 전향해온 인물이다. 그 정도로 톰 라이스의 난폭성과 광폭성은 정평이 나 있었다.

 

당시 일본의 최고의 영웅 역도산이 처참하게 톰 라이스에게 당하자, 최고의 강자를 보면 참지못하는 성격을 지녔던 최배달이 톰 라이스에게 도전장을 던졌다고 한다.

 

당시 일본언론들은 최배달이 톰 라이스에게 도전한 것은 동료인 역도산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고 보도했지만, 실상 최배달이 톰 라이스에게 도전한 것은 누가 최강인지를 가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얼마 후에 레슬링경기에서도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둘러서 상대방을 ko시키는 미치광이 레슬러인 톰 라이스와 최배달의 무제한급 경기가 실제로 벌어졌다고 한다.

 

최배달은 93년경에 한국에 와서 주병진쇼에 출연했는데, ‘주병진쇼에 출연한 최영의는 톰 라이스와의 실전대결을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한다.

 

 

경기가 시작되자, 톰 라이스는 마치 헤비급복서처럼 두주먹을 불끈 쥐고서, 최영의에게 가격하기 위해서 다가왔다고 한다.

 

최영의는 톰 라이스와의 경기에서 먼저 톰 라이스가 오른손펀치를 자신에게 뻗어왔다고 한다.

링위에서 무제한급 경기가 시작되자 마자톰 라이스가 갑자기 달려들더니최영의에게 먼저 기습적인 강력한 라이트펀치를 날렸으며방심하고 있었던 최영의는 그대로 톰 라이스의 강펀치를 관자놀이에 정통으로 맞고 그대로 다운당했다고 한다.

 

전직 헤비급복서였던 톰 라이스의 펀치력은 쇠덩어리처럼 무척 강했다고 하며톰 라이스의 펀치 한방에 최영의의 어금니 한 개가 부러졌다고 한다.

톰 라이스의 강펀치를 맞고 얼떨떨해진 최영의는 다운당했다가 다시 일어났는데, 햄머펀치를 갖고있는 톰 라이스에게 정면으로 맞서서는 안된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최영의만의 필살기술을 써먹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최영의는 곧바로 뒤편에 있는 오른쪽로프로 뛰어들더니, 그 로프를 발고 그 반동으로 왼쪽로프로 뛰었고, 또다시 그 왼쪽로프의 반동으로 오른쪽로프로 뛰었는데,

다시 세번째 로프반동을 이용해서 높이 뛰어올랐던 최영의는, 반동의 위력을 실은 강력한 오른쪽킥을 톰 라이스의 안면에 꽂아넣었다고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최영의의 삼단발차기라고 하는 것이며, 최영의의 삼단발차기 한방을 정통으로 턱에 얻어맞은 톰 라이스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고 대자로 쓰러진 톰 라이스의 명치에 최영의의 마지막 피니쉬펀치가 그대로 꽂혀버렸으며톰 라이스는 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그대로 실신해버렸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방학기가 쓴 연재만화 바람의 파이터에 나왔던 최배달 대 톰 라이스간의 대결의 내용이다.

 

  

이렇게 최영의는 역도산을 ko시켰던 톰 라이스를 ko시킴으로써, 역도산과의 상대비교에서 우위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역도산이 톰 라이스와 재대결을 벌여서 승리함으로써, 결국 최영의와 역도산간의 우위는 동등해지게 되었다.

 

최영의가 톰 라이스에게 도전했던 이유는 역도산의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최강이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기 위함이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최영의는 항상 최강의 파이터이기를 원했으며, 강자가 있다고 하는 곳은 반드시 찾아가서 도전해서, 그를 꺾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파이터였다.

 

최영의는 1994년도에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그는 폐암으로 인한 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는 죽기 5년전인 65세때까지도 끊임없는 훈련을 계속해왔다고 한다.

   

최배달은 1964년도에 극진공수도회를 설립해서, 제자들을 육성해나갔으며, 전세계 140개의 가맹국을 관할하는 국제가라테연맹의 총재를 지내기도 했다.

 

 

최영의 주병진쇼 출연인터뷰 동영상

 

 

 

 

 

 

최배달 무술훈련 동영상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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