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세계최강의 파이터 극진가라데 최배달, 료마 톰라이스의 실전대결, 무도여행

  

최영의 1923~1994

 

최배달은 조선인출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전국의 무도인들과 목숨을 건 무술대결을 펼쳐서, 승리를 거두었던 실전무도의 일인자이다.

 

최배달 같은 실전무도가는 앞으로 나오기도 힘들 뿐만아니라,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하는 진정한 무술영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일본가라데계를 실전무술로 평정했으며, 미국, 중국, 남미, 아시아에 있는 수많은 무술강호들과 대결을 펼쳐 모두 쓰러뜨림으로써, 50~60년대 당시 세계최강의 무도가임을 실전무술을 통해서 증명해보였던 탁월한 무도가였다.

 

최배달은 16세때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으로서일본 타쿠쇼쿠대학을 다닐 때부터 가라데에 입문했는데최배달이 수련했던 가라데는 일본의 유서깊은 송도관가라데였으며이후 그는 강유류 공수도도 함께 수련했으며 1942년도에 가라데 공인 4단을 획득했다고 한다.

 

 

그런데 최영의는 일본인들에게 행패를 부리던 미국인병사들을 두들겨패준 것 이 원인이 되어 지명수배령이 내려지자, 기요즈미산으로 올라가 입산수도하면서 뼈를 깍는 듯한 혹독한 훈련을 통해서, 자신의 가라데무술을 더욱 완성시켜 나갔다.

 

기요즈미산에서 1년 동안 혹독한 훈련을 하면서 최영의는 자신의 무술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나갔는데,

그는 기요즈마산 속에서 발차기로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훈련과 계곡에 있는 차돌을 당수와 주먹으로 쳐서 깨뜨리는 훈련, 그리고 손가락만으로 물구나무서기 하는 훈련등을 반복적으로 실행하면서, 자신의 주먹과 발을 강철보다 더 단단한 무기로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젊은시절의 최영의 사진

 

최배달은 자신의 가라데무술을 완성시키고 난 뒤, 일본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가라데고수들에게 도전하게 되는데, 이른바 도장깨기무도여행을 시도한다.

 

최영의는 일본의 수많은 가라데실력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도전장을 던졌고 그들과 대결을 펼쳤으며, 싸우는 족족 일본 가라데고수들을 모두 쓰러뜨렸다고 한다.

최영의가 일본의 난다긴다하는 전국의 가라데고수들에게 도전을 해서, 모두 다 꺾어버림으로써, 명실상부한 일본 최고의 파이터임을 증명해보였다고 한다.

 

일본 역사상 아니, 세계역사상 이렇게 한명의 무술인이 나라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무도가들과 실전대결을 펼친 것은 아마도 최영의가 최초일 것이며, 더욱이 200200승을 거둔 최배달의 대결기록은 영원히 깨지질 않을 것이다.

 

 

최배달(최영의)은 일본의 가라데고수들과 대결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남미, 중국 유럽등 세계의 명망높은 무도가들을 찾아가서, 실전대결을 펼쳤다고 한다.

 

일본의 가라데계를 평정했던 최영의는 일본에서 더 이상 적수가 없자, 미국, 프랑스, 브라질, 그리고 중국 등 세계의 여러나라들을 돌아다니면서 이름높은 무도가들과 무술대결을 펼쳤고, 그들을 모두 꺾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최배달이 갑자기 일본에서 도장깨기에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점잖은 신시였던 최영의가 갑자기 일본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도장깨기에 나선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최영의는 1948년도 26세의 나이에 전일본가라데선수권대회에 출전해서,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고 한다.

그런데 최배달(최영의)은 당시 일본에서 최고의 유망주로 각광을 받았던 난바와의 결승전대결에서 대결을 펼쳐서 그를 ko시켜버렸지만, 최영의는 난바와 공동우승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 이유는 당시 일본가라데선수권대결에서는 실전대결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영의가 난바를 ko시킨 것은 규정에 어긋났기 때문에, 결국 최영의는 상대를 쓰러뜨리고도 공동우승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영의는 실전대결이 아닌 형식주의를 지향하는 일본가라데계의 오래된 관행에 심한 염증과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인출신이 일본가라데선수권대회에서 우승자로 뽑히자,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조롱과 야유가 따라다녔다고 하며, 심지어는 최배달(최영의)에게 도전하는 일본무도가들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이같은 비아냥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위해, 그리고 최배달(최영의)은 자신의 실전 무도철학을 증명해보이기 위해서, 일본전역의 가라데도장을 찾아다니면서, 수많은 가라데고수들과 대결을 펼치는 도장깨기무도여행을 실행해나가게 된 것이다.

 

 

최영의는 일본의 유서깊은 송도관가라데의 나조십걸로 불리우는 송도관가라데 10명과 대결을 펼쳐서, 그들을 군말없이 모두 쓰러뜨렸으며, 마쓰이부관장을 복부차기로 ko시켜버림으로써, 송도관가라데계를 쑥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최영의는 그후에도 일본가라데계에서 명망높은 실력자인 사카하라, 마쓰이, 모리 등 가라데고수들을 계속해서 쓰러뜨리면서, 자신의 명성을 드높여나갔다.

 

최배달은 총 200번을 싸웠으며 200승을 거뒀다고 한다. 이중에 딱 한번 최영의가 무승부를 거뒀던 대결이 하나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중국의 태극권의 고수 진노인과의 대결이 그것이라고 한다.

 

최영의는 중국에 태극권의 고수이자 최고의 쿵푸실력자 진노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를 찾아가서 실전대결을 제의했다고 한다.

 

최영의와 진노인간의 대결이 펼쳐졌는데, 최영의가 발차기공격과 정권치기 공격을 여러차례 퍼부었지만, 왠일인지 진노인이 아주 유연한 몸놀림으로 최영의의 공격을 이러저리 피해나갔다고 한다.

 

 

결국 최영의의 계속된 공격이 진노인의 유연한 몸동작으로 인해 모두 무위가 되어버렸다고 하며, 진노인은 최영의의 계속된 공격에도 전혀 타격을 받지않았고, 오히려 최영의가 공격하다가 지쳐버렸으며, 결국 두사람의 대결은 승부를 보지못하고 끝나고 말았다고 한다.

 

최영의는 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공격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상대를 만나서 고전하게 되었는데, 최영의는 진노인과의 대결에서 승부가 나지 않았지만, 자격지심으로 진노인과의 대결에서 패배했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이같은 이야기가 전해져서 최영의가 진노인에게 패배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지만, 최영의는 나중에 자신이 진노인에게 패배한 것이 아니라, 승부를 보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가 있다.

 

최영의의 수많은 무술대결 중에서 가장 위험했고 가장 치열했던 명승부를 꼽자면, 검객 료마와의 대결과 무사시노벌판의 대결, 그리고 톰 라이스와의 대결을 꼽을 수가 있다.

 

최배달의 일생일대의 가장 치열했던 명승부인 검객 료마, 무사시노의 130의 대결, 그리고 톰 라이스와의 대결을 살펴보도록 한다.

 

 

최배달과 검객 료마의 대결

 

최배달은 수많은 일본무도가들과 싸워서 승리를 거뒀지만, 그에게 가장 위험하고 치열했던 명승부는 뭐니뭐니해도 칼잡이 검객 료마와의 대결을 꼽을 수가 있다.

 

검귀라는 별명을 가진 칼잡이 료마는 검도 7단의 고수로서, 그의 검술실력을 일본검도계에서도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뛰어난 검술실력을 지니고 있는데, 그가 휘두른 칼에 단 한방이라도 맞는다면, 최영의는 그대로 목숨이 달아날 수도 있는 대결이었다.

 

 

최배달(최영의)는 검귀 료마로부터 도전을 받았다고 하며, 검귀 료마와의 대결로 인해서 최영의는 일생일대의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검도 7단의 고수 료마가 휘두른 칼날을 한방이라도 맞기라도 하면,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최영의라도 치명상을 입고마는 것이다.

 

칼잡이와의 대결은 다른 무도가들과의 대결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그냥 한방의 칼날에 목숨이 달아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냥 무술대결에서 지고이기는 문제가 아닌, 죽느냐 사느냐의 대결인 것이다.

 

최영의는 검객 료마와의 대결을 덤덤하게 받아들였으며, 죽을 결심을 하고서는 료마와의 대결장소로 정해진 아오야마묘지로 나갔으며, 칼을 들고있는 료마와의 대결을 시작했다.

 

검귀 료마는 최배달을 보자마자, 칼을 빼들고서는 최배달에게 달려들어 날카로운 칼날을 몇 번 휘둘러댔다.

그러자 최배달(최영의)의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또다시 료마가 칼을 내리치자 최영의는 신속하게 뒤쪽으로 피해버렸는데, 이번에도 최영의의 등쪽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검객 료마로부터 두번의 공격을 받았을 뿐인데도, 최영의는 옆구리와 등부분에 심한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게된 것이다.

 

 

이제 최배달(최영의)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을 해야만 하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되었다. 더 이상 료마의 칼공격을 받다가는 생명을 읽게될 수 있기 때문에, 항복을 하고 생명을 건지던가,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 끝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던가 말이다.

 

그렇지만 최영의는 끝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쪽을 택했다고 한다.

 

명예와 자존심이 강했던 최배달에게는 패배나 항복은 죽기보다 싫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최영의는 검객 료마와의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한다고 해도, 자신의 명예만은 건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료마는 자신의 두 번의 공격으로 최영의가 상처를 입게되자, 회심의 미소를 흘리면서, 더빨리 싸움을 끝내겠다는 의지로 또다시 자신의 칼을 휘둘러왔다.

최배달(최영의)은 주변에 있는 나무와 바위 같은 지형지물을 최대한도로 활용해서, 료마의 칼공격을 이리저리 피해다녔다고 한다.

 

 

계속해서 뒤로 밀리던 최영의는 더 이상 자신을 가려줄 나무와 지형지물이 없는 벌판으로 몰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최영의는 료마의 칼공격을 막아줄 개체도, 더 이상 피해버릴 곳도 없는 지경에 몰린 것이다.

 

순간 최배달(최영의)의 머릿속으로 이런 영감이 스치고 지나갔다고 한다. 맨손잡이가 칼을 든 상대방과의 대결에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상대는 검도 7단의 고수가 아닌가!

 

최영의는 상대방의 칼공격을 역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료마에게 차라리 자신의 왼쪽팔을 내어주고, 오른쪽팔로 료마의 급소를 공격해 쓰러뜨리는 전법을 구상했던 것이다.

 

료마의 칼공격을 더이상 피해버릴 방법이 없어진 상태에서, 최영의는 목숨을 건 최후의 선택을 한 것이다.

한쪽팔을 내어주고 다른쪽팔로 복부를 공격하라료마의 칼공격이 날아드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최영의는 이런 판단을 내렸던 것이고, 곧이어서 료마의 또다른 칼공격이 이어졌다.

 

료마는 자신의 칼로 위에서 아래로 그대로 내려쳤으며, 료마가 칼을 최영의에게 내리치는 순간, 최영의는 두손으로 합장하면서 료마의 칼을 잡아버렸다고 한다.

료마가 워낙 힘차게 칼을 내려쳤기 때문에, 최영의가 두손으로 붙잡았던 칼은 그대로 최영의의 왼쪽어깨에 찍혀버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료마가 내리친 칼은 최영의의 두손에 의해 붙잡힌 상태로 최영의의 왼쪽어깨에 박혀버린 것이다. 그리고나서 최영의는 오른쪽주먹을 그대로 료마의 명치에 꽂아넣었다고 한다.

 

최영의의 어깨에 칼을 내리꽂았던 료마가 순간적으로 방심한 사이에, 최영의의 오른쪽펀치가 정확하게 료마의 명치에 꽂혔으며, 료마는 최영의의 강펀치 한방을 맞고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맨손의 최영의가 장검을 가진 검도 7단의 고수를 펀치 한방으로 쓰러뜨렸던 것이다. 그런데 료마는 최영의의 강펀치에 맞는 순간 내장이 파열되어 그대로 숨을 거뒀다고 한다.

 

최배달은 오직 맨손만으로 칼을 가진 검객 료마를 군말없이 ko시켰을 뿐만아니라, 본의 아니게 그를 즉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최배달은 검객 료마를 승부 끝에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그후 관동가라데의 명인 가네토라와 대결에서 승리한 후에, 좌절감에 빠진 가네토라가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또다시 일어나자, 최영의는 크게 낙심하게 되었고, 절망감과 회의감에 빠져서, 수개월동안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 일을 겪고난 후에, 최배달은 다시 심기일전하기 위해서, 또다시 가나가와현에 있는 하코네산에 올라 두번째 입산수도 훈련을 실시하게 된다.

 

첫번째 입산수도훈련에서는 살기(殺氣)를 터득하기 위해서 실행되었다면, 두 번재 입산수도훈련은 살기가 아닌, 자기 스스로의 극기(克己)를 위한 훈련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남을 이기기 위한 훈련이 아닌, 자신을 이기기 위한 수양의 성격이 강한 훈련이었던 것이다.

 

무사시노벌판의 130명의 대결

 

최배달(최영의)이 두 번째 입산수도훈련을 마치고, 하코네산에서 내려오자 마자, 최영의에게는 또다른 큰 위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하코네산에서 내려온 직후에, 일본정통 가라데무도인들이 연합해서, 최영의에게 도전장을 보내왔던 것이다.

 

, 일본의 내노라하는 정통가라데고수들 30명이 연합체를 결성해서, 단체로 최배달 한사람에게 대결을 신청했다고 한다. 정말 비열하고 졸열한 일본 무도인들의 야비한 수작이 아닐 수가 없다.

 

가라데명문가의 가토 7단을 위시로해서, 오키나와의 가라데고단자 10, 그리고 어전유도대회 우승자 7, 또한 검도유단자 8명이 포함되어 있는 전일본 정통무술인들이 연대한 연합대표무도가들 32명이 단체로 최배달 한사람에게 공개도전장을 던졌다고 한다.

 

 

아무리 최배달이 뛰어난 무도가라고 하더라도, 일반인이 아닌 일본무도계에서 뛰어난 실력자들만을 모아놓은 일본무도가대표 32명이 한꺼번에 최영의 한사람을 상대로 도전한다는 것은, 너무 야비하고 비겁한 짓이 아닌가?

 

그것도 최영의가 거절하지 못하도록 여러 신문사에도 알리면서,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던졌다고 한다. 정말로 섬나라 왜인들의 비열하고 야비한 근성이 여지없이 표출된 것이다.

 

이런 말도되지 않는 일본무도가대표 32명의 대결신청을 최배달이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도 결코 최영의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런데 최배달은 일본무도가대표 32명의 도전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번에 최배달에게 도전장을 던진 일본무도가대표 32명 중에는 검도유단자가 8명이나 끼여있었다고 한다.

도저히 승산이 없는 이런 무모한 대결을 신청한 밀본무도가들도 한심하기 그지없지만, 최배달은 기꺼이 이같은 무모한 대결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서 큰 놀라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칼을 든 검객 8명이 포함된 32명의 일본무도가 고수들과 최배달 한명의 기가 막히는 싸움이 실제로 벌어졌다고 한다.

 

무사시노벌판에서 벌어진 최영의와 일본무도가들의 132의 대결에서 최배달은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고 한다.

132의 대결은 마치 권총 하나로 탱크와 맞서 싸우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승산이 절대 없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인 것이다.

 

그런데 도전장을 받았던 최배달은 약속된 날에 싸움장소인 무사시노들판으로 갔다고 한다.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대결을 벌이기 하루 전날, 최배달은 이 무사시노벌판에 답사를 왔었다고 한다. 최배달은 130의 대결이 벌어질 무사시노벌판에 미리 와서, 이곳의 지형지물을 면밀하게 파악해놓았다고 한다.

 

최배달이 무사시노벌판에 미리 답사를 온 것은, 이 곳의 지형지물을 최대한도로 활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싸움환경으로 삼기 위해서라고 한다.

 

실제로 최배달은 일본무도가대표 32명과의 대결에서, 무사시노들판에 있는 갈대숲과 연못과 나무숲을 최대한도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데 사용했으며, 최배달이 일본무도가대표들과 대결에서 그들의 절반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고 한다.

 

최배달은 대결이 벌어지는 무사시노벌판에 일부러 약속시간보다 늦게 나타남으로써, 일본무도가대표들의 마음을 한없이 초조하게 만들고, 평정심을 잃게 만들었다.

 

그리고 최배달은 무사시노벌판에서 일본무도가대표을 보자마자, 나무와 숲이 많은 지역으로 그들을 유도했다고 하며, 일본무도가대표들의 사이드부분부터 차례로 격파해나갔다고 한다.

 

 

최배달은 일본무도가대표들의 오른쪽부분으로 달려들어서, 발차기위주의 공격을 펼쳐서, 여러명의 무도가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렸다고 한다.

 

그런 후에 최배달은 일부러 달아나는 척하면서, 그들을 따라오게 유도했으며, 나무숲 사이의 좁다란 협로로 그들을 유인해서,

일본무도가대표들이 한꺼번에 포위공격을 하지못하도록 했으며, 좁다란 협로에서 쫒아오는 일본무도가들을 정권치기와 발차기로 차례차례로 쓰러뜨려나갔다고 한다.

 

커다란 두 개의 나무사이의 좁다란 협로에 우뚝 서서 달려드는 일본무도가들을 하이킥과 복부킥을 꽂아넣어서 그들을 쓰러뜨렸나갔는데, 최배달의 강력한 킥공격과 강펀치를 맞았던 일본무도가들은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다.

 

또한 최배달은 일본무도가들이 공격을 해오면, 수풀속으로 숨어버렸으며, 다시 수풀속에서 나오면서 발차기공격을 펼쳐서 그들을 쓰러뜨렸고, 또다시 수풀속으로 숨었다가 뛰쳐나오면서 공격하는 등 매우 지능적인 전법을 구사했다고 한다.

 

이런 최배달의 신출귀몰한 공격으로 일본무도가들은 15명이상이 이미 쓰러졌다고 하며, 이제 최배달이 상대해야할 적군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수십명이 집단으로 공격해도 최배달 한사람을 제압하지 못하자, 초조해진 일본무도가들은 자신들의 히든카드인 8명의 검객들을 전면에 배치해서, 최영의에게 압박해 들어왔다고 한다.

 

검객 료마를 꺾었던 전력이 있던 최배달이었지만, 이제는 검객이 8명으로 불어나 있었으니, 도무지 승산이 없는 대결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최영의는 하루전날 미리 이곳으로 와서 지형지물을 충분히 익혀놨는데, 최영의는 재빨리 갈대숲쪽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무사시노벌판의 갈대숲에 있는 갈대들은, 그 키가 사람키 만큼 컸고, 그 갈대숲은 범위가 넓기 때문에, 사람이 숨기에는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최배달은 그 키큰 갈대숲속으로 사라져버렸으며, 일본무도가들은 광할한 갈대숲속에서 최배달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십수명의 일본무도가들이 최영의를 찾기위해서, 갈대숲 이곳저곳을 헤메고 다녔지만, 워낙 그곳의 갈대숲은 범위가 엄청나게 넓었으므로 최배달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사이 최영의는 갈대숲의 한쪽 깊숙한 곳에 앉아서 지친몸과 마음을 풀고, 쉬식을 취하고 있었다.

 

수십분간 일본무도가들은 최배달을 찾아다녔지만, 그를 찾지못하게 되자, 그들은 마침내 갈대숲에 불을 놓아서 갈대숲을 태워버렸다고 한다.

 

 

일본무도가들은 최배달을 찾기위해서, 갈대숲 이곳저곳에 불을 질렀으며, 갈대들이 점점 불에 타서 없어져버리자, 최영의는 연못이 있는 갈대숲 가장자리로 뛰어갔으며, 결국 최영의는 연못속으로 숨어들어갔다고 한다.

 

일본무도가들이 계속해서 불을 놓은 바람에, 갈대숲 전체가 불에 타버렸지만, 연못속에 숨은 최배달은 끝내 발각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최배달은 연못속에 완전 잠수한 상태에서 갈대대롱을 입에 물고서, 그 대롱으로 숨을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갈대숲 전체를 모두 태워버린 일본무도가대표들은 연못근처에 와서 찾아보았지만, 최영의를 발견하지 못한 채, 다시 다른지역으로 이동해버렸다고 한다.

 

일본무도가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멀리 떨어지자, 그 틈을 이용해 물속에 있던 최영의는 잽싸게 물밖으로 기어나왔고, 있는 힘을 다해서 다른 지역으로 뛰어갔으며, 마침내 무사시노벌판을 탈출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한다.

 

무사시노들판에서 벌어진 최영의와 일본 무도가연합대표간의 132의 대결에서 최영의는 절반의 승리를 거두는 성과를 낸 것이며, 32명의 일본무도가대표단은 단체로 최영의를 공격하고도, 절반의 희생자를 발생시켰을 뿐. 최영의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도 못했던 것이다.

 

결국 무사시노벌판의 132의 대결은 최배달이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최영의 한사람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일본정통무도가들은 가라데, 유도, 검도 등 여러분야의 무술고단자들을 총동원하고도서, 최영의에게 15명이 넘는 희생자만 발생시켰을 뿐이며, 최영의를 끝내 쓰러뜨리지 못했다.

 

이 무사시노의 대결로 인해서, 혼자서 용기있는 맞섰던 최배달은 더욱 명성이 높아지게 되었으며, 일본정통 무도가연합체는 평생 씻을 수 없는 비겁자들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되었다.

 

최배달 한사람을 잡기 위해서 각개의 무술고단자 32명을 동원해서 출동했던 일본무도가연합대표들은 일본언론과 매스컴으로부터 실랄한 비판을 받았다고 하며,

더이상 최배달을 공격할 명분이 사라져버린 일본정통무도가들은 더이상 최배달에게 도전하지 못하고, 최영의의 탁월한 무술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최배달은 용기있는 행동으로 인해서, 절대절명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으며, 오히려 자신의 명성을 더욱 드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최배달 대 톰 라이스의 대결

 

최배달의 실전대결 중에서 유명한 대결이 바로 프로레슬러인 톰 라이스와의 대결이다.

 

몸무게 100kg이 훨씬 넘는 거대한 체구의 톰 라이스는 1950년대에 영국 헤비급레슬링챔피언을 지낸 완력과 펀치력이 대단한 레슬러로서, 링위에 올라가면 엄청나게 포악해져서, 잔인하게 상대선수들을 두들겨팬다고 하여, ‘붉은전갈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톰 라이스는 1950년대 중반경 일본에서 가장 위대한 레슬러로 군림했던 역도산과 대결을 펼쳤는데, 경기에서 역도산을 무참히도 두들겨패고,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은 장본인이다.

그 이전 경기까지 역도산은 무패의 전적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승승장구했었는데, 역도산에게 최초로 패배를 안겨다준 선수가 바로 톰 라이스라고 한다.

 

  커다란 덩치에 외모자체가 험상궂게 생긴 톰 라이스는 링위에서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는 링위의 무법자였다

 

톰 라이스는 레슬링경기에서 레슬링기술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펀치를 휘두르기를 더 좋아하는 선수인데, 그가 휘두른 펀치에 맞고 ko패당하는 레슬러들이 수없이 많았으며 링위에서 난폭하고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은 레슬러였다고 한다.

 

톰 라이스의 펀치는 쇠망치처럼 강력했다고 하며, 그의 강펀치에 천하의 역도산도 무릎을 끌고만 것이다. 톰 라이스는 원래 헤비급복서 출신이었기 때문에, 강력한 원투펀치기술과 막강한 펀치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톰 라이스는 워낙 성격이 난폭해서 헤비급복서로 활동하던 시절에, 판정을 잘 못했다는 이유로 레프리를 두들겨패는 행패를 부려서, 영국헤비급선수에서 제명당했다가, 헤비급레슬러로 전향해온 인물이다. 그 정도로 톰 라이스의 난폭성과 광폭성은 정평이 나 있었다.

 

당시 일본의 최고의 영웅 역도산이 처참하게 톰 라이스에게 당하자, 최고의 강자를 보면 참지못하는 성격을 지녔던 최배달이 톰 라이스에게 도전장을 던졌다고 한다.

 

당시 일본언론들은 최배달이 톰 라이스에게 도전한 것은 동료인 역도산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고 보도했지만, 실상 최배달이 톰 라이스에게 도전한 것은 누가 최강인지를 가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얼마 후에 레슬링경기에서도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둘러서 상대방을 ko시키는 미치광이 레슬러인 톰 라이스와 최배달의 무제한급 경기가 실제로 벌어졌다고 한다.

 

최배달은 93년경에 한국에 와서 주병진쇼에 출연했는데, ‘주병진쇼에 출연한 최영의는 톰 라이스와의 실전대결을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한다.

 

 

경기가 시작되자, 톰 라이스는 마치 헤비급복서처럼 두주먹을 불끈 쥐고서, 최영의에게 가격하기 위해서 다가왔다고 한다.

 

최영의는 톰 라이스와의 경기에서 먼저 톰 라이스가 오른손펀치를 자신에게 뻗어왔다고 한다.

링위에서 무제한급 경기가 시작되자 마자톰 라이스가 갑자기 달려들더니최영의에게 먼저 기습적인 강력한 라이트펀치를 날렸으며방심하고 있었던 최영의는 그대로 톰 라이스의 강펀치를 관자놀이에 정통으로 맞고 그대로 다운당했다고 한다.

 

전직 헤비급복서였던 톰 라이스의 펀치력은 쇠덩어리처럼 무척 강했다고 하며톰 라이스의 펀치 한방에 최영의의 어금니 한 개가 부러졌다고 한다.

톰 라이스의 강펀치를 맞고 얼떨떨해진 최영의는 다운당했다가 다시 일어났는데, 햄머펀치를 갖고있는 톰 라이스에게 정면으로 맞서서는 안된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최영의만의 필살기술을 써먹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최영의는 곧바로 뒤편에 있는 오른쪽로프로 뛰어들더니, 그 로프를 발고 그 반동으로 왼쪽로프로 뛰었고, 또다시 그 왼쪽로프의 반동으로 오른쪽로프로 뛰었는데,

다시 세번째 로프반동을 이용해서 높이 뛰어올랐던 최영의는, 반동의 위력을 실은 강력한 오른쪽킥을 톰 라이스의 안면에 꽂아넣었다고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최영의의 삼단발차기라고 하는 것이며, 최영의의 삼단발차기 한방을 정통으로 턱에 얻어맞은 톰 라이스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고 대자로 쓰러진 톰 라이스의 명치에 최영의의 마지막 피니쉬펀치가 그대로 꽂혀버렸으며톰 라이스는 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그대로 실신해버렸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방학기가 쓴 연재만화 바람의 파이터에 나왔던 최배달 대 톰 라이스간의 대결의 내용이다.

 

  

이렇게 최영의는 역도산을 ko시켰던 톰 라이스를 ko시킴으로써, 역도산과의 상대비교에서 우위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역도산이 톰 라이스와 재대결을 벌여서 승리함으로써, 결국 최영의와 역도산간의 우위는 동등해지게 되었다.

 

최영의가 톰 라이스에게 도전했던 이유는 역도산의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최강이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기 위함이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최영의는 항상 최강의 파이터이기를 원했으며, 강자가 있다고 하는 곳은 반드시 찾아가서 도전해서, 그를 꺾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파이터였다.

 

최영의는 1994년도에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그는 폐암으로 인한 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는 죽기 5년전인 65세때까지도 끊임없는 훈련을 계속해왔다고 한다.

   

최배달은 1964년도에 극진공수도회를 설립해서, 제자들을 육성해나갔으며, 전세계 140개의 가맹국을 관할하는 국제가라테연맹의 총재를 지내기도 했다.

 

 

최영의 주병진쇼 출연인터뷰 동영상

 

 

 

 

 

 

최배달 무술훈련 동영상

 

 





 

 

 

 

Posted by 프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