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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물질 함유된 CMIT·MIT이 검출된 메디안치약 11개 제품 목록명단, 식약처 회수명령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치약제품에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들어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몇 년전에 2백여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던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국민들이 엄청난 충격속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또다시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성분이 메디안치약 제품에 함유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926일 식약처에 따르면, 메디안치약의 여러제품들에서 가습기 살균제성분과 동일한 화학물질인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CMIT)과 메칠이소치아졸리논 혼합물(MIT)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식약처는 앞으로 해당 성분이 함유된 메디안치약 제품들을 모두 회수할 방침이라고 한다.

 

 

정말 생각만해도 소름이 오싹 끼치는 옥시 가습기살균제사태인데, 그 동일한 화학물질이 우리가 매일같이 사용하고있는 치약에 들어었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힐 따름이다.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이 얼마나 심하게 안전불감증에 걸려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에 식약처가 회수명령을 내린 제품은 아모레 퍼시픽에서 만든 메디안치약제품 11개종이라고 한다.

 

 

식약처에서 가습기살균제 성분과 동일한 화학물질이 들어있어 회수명령을 내린 치약제품의 목록(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메디안후레쉬마린치약’ ‘메디안바이탈에너지치약’ ‘메디안후레쉬포레스트치약’ ‘메디안바이탈클린치약’ ‘메디안바이탈액션치약’ ‘메디안잇몸치약’ ‘그린티스트치약’ ‘송염본소금잇몸시린이치약’ ‘뉴송염오복잇몸치약’ ‘송염청아단치약플러스’ ‘본초연구잇몸치약

 

이들 제품들은 아모레 퍼시픽에서 만든 제품들이라고 하며, 작년도에만 총 5,000만개가 생산되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식약처에서 회수조치를 내린 메디안치약 제품은 총 11개종으로 그 유해성이 의심스러운 제품들이니, 소비자분들은 혹시라도 마트에서 이런 제품을 보면, 절대로 구입하지 마시기 바란다.

 

메디안치약제품에 방부제(보존제)로 함유되어 있는 CMIT·MIT성분은 사람의 코나 입을 통해서 인체에 흡입하였을 경우에, 기침이나 천식이 일어날 수 있으며,

심각한 폐의 손상을 입을 수 있으며, 피부손상도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치약에 이들 성분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의 일부국가에서는 이러한 성분을 치약의 보존제와 화장품 보존제로 사용하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하며, 유럽의 일부국가에서는 CMIT·MIT의 농도를 최대 15ppm까지는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문제가 되고있는 성분 CMIT·MIT은 상품의 보존제로 쓰이는 화학물질인데, 미국과 유럽의 일부국가에서는 성분사용에 규제가 느슨하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이들 CMIT·MIT성분들이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성분들이기 때문에, 더욱 심하게 규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치약의 보존제로 사용가능한 성분은 파라옥시벤조산메틸, 벤조산나트륨, 파라옥시벤조산 프로필의 세가지 뿐이라고 한다 

 

 독성물질 함유로 회수조치된 메디안치약 제품 목록리스트

 

식약처에서 회수명령을 내린 11개의 메디안치약 제품에서는 CMIT·MIT성분이 0.0022~0.0044ppm 가량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해당제품들은 식약처에서 회수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구입한 소비자들은 해당제품을 반품할 수 있다고 하며, 방법도 간단하다.

해당 제품들을 구입한 소비자들은 그제품의 구입처에서 반품하면 된다고 한다.

 

식약처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치약제품이 의약외품으로 분류되어 있어서, 다른 나라들보다 더욱 엄격한 기준과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해당 성분이 들어간 관련치약제품들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고있는 성분을 사용했기 때문에, 회수조치를 내린 것이라고 한다.

 

 

식약처는 해당 물질이 들어간 치약이라도, 치약의 특성상 물로 헹궈서 내뱄기 때문에 인체의 유해성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같은 식약처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는가? 여태까지 식약처나 정부당국에서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해왔는가?

 

옥시사태에서 보더라도, 사람들이 백수십명이나 죽었는데도, 식약처와 정부당국은 수년동안 수수방관해오지 않았던가?

 

탈취제, 방향제, 살균제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제품들에서 인체에 해로운 성분들이 계속해서 검출되고 있는 상황인데, 또다시 우리가 매일같이 사용하고 있는 치약에서 유해성이 의심되는 화학물질이 발견되어서, 소비자의 한사람으로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다.

 

 

대기업에서 만든 제품들을 어디까지 믿고 사용해야 할 것인지, 정말 답답할 따름이다. 대기업의 관심은 소비자들의 건강이 아니라, 자신들이 최대한의 수익을 얻는 데에만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제 방향제, 살충제에 이어서 치약도 소비자들이 스스로 자급자족해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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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몽고의 침입전쟁, 김윤후의 처인성 충주산성 전투와 살리타이 살해

 

 13세기초 고려에서는 최씨무신정권이 정권을 장악한 후, 최충헌, 최우, 최항, 최의등 최씨 4대가 40여년간 권력을 이어오고 있는 중이었는데

몽골에서는 칭기스칸이라고 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출현해서, 몽골을 통일하고 몽골대제국을 세웠다.

 

칭기스칸은 몽골제국을 세운 후에, 동서남북으로 영토확장정책을 추진했는데, 13세기 초 동북아의 패권자였던 금나라를 공격해서 금나라를 마침내 멸망시켰으며,

동북아의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한 몽골제국(원나라)는 그 다음상대로 남중국에 있는 송나라(남송)와의 전쟁을 벌여, 중원대륙을 집어삼킬 계획을 갖고있었다.

 

이처럼 동북아의 국제정세가 몽골제국을 중심으로하는 새로운 역학관계로 급변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몽골군에게 쫒긴 거란족군사들이 고려의 국경을 넘어 고려로 들어오는 사건이 발생했고,

뒤따라온 몽골군과 고려군은 강동성에 은거하는 거란족을 합동작전을 펼쳐서, 마침내 소탕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연찮게도 거란족 때문에 고려군과 몽골군이 처음으로 서로 협력하는 관계가 되었고, 거란족소탕을 빌미로 몽골과 고려는 협약을 맺고 서로 교류하는 관계가 되었

는데,

문제는 몽골의 고려에 대해 과중한 세공요구와 오만불손한 몽골사신의 횡포로 두나라 사이에 불협화음이 발생하게 된다.

 

몽골과 고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에서 마침내 고려국경지역에서 몽골사신 저고여가 의문의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었고, 몽골은 저고여피살을 빌미로 고려애 대한 침략을 개시하면서, 마침내 고려와 몽골의 기나긴 여몽전쟁이 시작되게 된다.

 

이때부터 몽골은 고려를 상대로 40년 동안 총 6차례나 침략해 들어왔으며, 고려 또한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격렬하게 항전하였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지닌 몽골의 대군을 상대로 고려는 굴복하지 않고 40년간을 항전을 계속해나갔지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고려는 점점 전국토가 황폐화되면서,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몽골과의 전쟁에서 몽골군의 적장을 살해하는 등 몽골군을 두 번씩이나 무찌른 여몽항쟁의 대영웅이 탄생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승려 김윤후이다.

 

김윤후는 정규군의 사령관도 아니고, 국가의 녹을 먹는 관리도 아닌 평범한 중의 신분이었는데, 일개의 승려가 백성들을 규합하고 리더쉽을 발휘해서, 몽골의 대군과 맞서서, 막강한 몽골군을 격퇴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고 한다.

 

승려 김윤후는 누구이며, 그는 어떤 전략으로 세계최강의 몽골군을 격퇴할 수 있었을가?

 

1231년에 몽골의 1차침입이 시작되고 자주와 구주에서 고려군은 몽골군과 싸워서 승리했지만, 몽골은 날랜 기병들을 앞세워서 고려의 수도 개경으로 직접 진격해들어가서, 수도 개경을 포위하고 고려를 압박했다.

 

고려는 하는 수 없이 임시적으로 몽골군과 강화를 맺었고 몽골군은 철수하였는데, 몽골이 강화의 조건으로 내걸은 사항은 막대한 양의 조공을 몽고에 바치는 것과 다루가치라고 하는 감독관을 고려에 파견하는 것이었다.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무신정권의 수장 최우는 몽골군이 돌아가자 마자, 몽골과의 화친의 약속을 저버리고, 수도를 강화도로 천도하여 몽골군의 침입에 항전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최우정권의 강화천도는 몽골에 대한 결사적인 항전의지를 대내외에 표방한 것으로, 몽골과의 화친을 모두 무효화하는 것이어서, 몽골은 그 이듬해인 1232년도에 살리타이장군의 통솔하에 2차침입을 단행했다고 한다.

 

1232년 살리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은 서경과 개경을 거쳐서, 경기도 광주를 지나 처인성에 이르렀는데, 이 처인성에서 몽골군은 아주 대단한 고려의 장수를 만나서, 더 이상 진격을 멈추고 후퇴해야만 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고려에 쳐들어와 파죽지세로 서경과 개경을 짓밟고 남쪽 처인성까지 내려왔던 용맹한 몽고군의 진격을 멈추게 한 처인성의 장수는 누구였을까?

 

 

  당시 살리타이의 몽골군과 맞서 항전을 펼쳤던 처인성은 오늘날의 용인에 있는 자그마한 토성이었다. 야트막한 언덕베기에 흙으로 대충대충 쌓아서지은 둘레 400m밖에 안되는 작은 토성이었고, 이곳에 사는 백성은 천민들인 부곡민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 처인성에는 백현원의 승려 김윤후라는 중이 있었는데, 승려 김윤후는 처인성의 부곡민들을 모으고 승병들을 규합해서, 몽골의 대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했다고 한다.

 

김윤후는 몽골군들이 북쪽에서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승병들까지 동원해서 돌멩이와 죽창, 화살 등 싸울 수 있는 모든 무기가 될만한 것들을 다 모으고, 전략을 수립해서 몽골군과의 전투에 대비했다고 한다.

 

마침내 살리타이가 진두지휘하는 몽골군이 처인성을 포위하면서, 김윤후의 민병대와 몽골군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개시되었다고 한다.

 

 

몽골군이 노도와 같은 맹렬한 기세로 처인성을 기어오르면서, 처인성에 대한 공격을 펼쳤으며, 처인성안의 민병대는 악착같이 성을 사수하면서, 아슬아슬한 공방전이 연일 이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맹렬한 기세로 처인성으로 밀고들어왔던 몽골군이 갑자기 기세가 꺾이고, 철수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몽골의 최고지휘관인 살리타이가 전투중에 사살당하고 만 것이다. 몽골의 최고사령관 살리타이는 처인성을 향해서 부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는데,

성위 망루에 있던 고려민병대의 지도자 김윤후가 곧바로 화살을 쏴서, 적장 살리타이의 머리를 관통시켜 사살해버렸다고 한다.

 

몽골군의 최고사령관이 처참하게 죽어버리자, 기세등등했던 몽골군은 크게 사기가 꺾이게 되었고, 결국 몽골군은 처인성공략을 포기하고 철수해버렸다고 한다.

 

 

원래 몽골군은 최고지도자가 죽으면 몽골군 스스로 후퇴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한다.

정규군대도 아니고, 고작 천민신분이었던 처인성의 부곡민들이 정규군들도 해내기 힘든 천하제일의 몽골의 대군을 물리치는 대업을 이룬 것이다.

또한 처인성의 승리를 이끈 최고의 공로자는 바로 승려 김윤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몽골 2차침입군의 최고사령관 살리타이를 죽임으로써 손쉽게 몽골군을 물리칠 수 있었기에, 몽골군과의 전투의 최고의 공로자는 승려 김윤후인 것이다.

 

그런데 살리타이를 사살한 주인공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고려사 열전 김윤후에는 몽골원수 살리타이가 와서 처인성을 공격하자, 김윤후가 그를 활로 쏴서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몽골원수 사르탁(살리타이)를 죽인 사람은 승려 김윤후가 맞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사르탁(살리타이)이 처인성을 공격하자, 성안으로 피난와있던 승려가 그를 활로 쏘아서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앞의 기록에서는 직접 김윤후가 살리타이를 죽였다고 기록했고, 다른 기록에는 승려가 살리타이를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앞뒤 문맥상 살리타이를 죽인 인물은 김윤후임을 암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김윤후가 몽골군을 격퇴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우자, 고려조정에서는 처인성의 승리를 크게 기뻐하면서, 처인성승리의 일등공신인 김윤후에게 큰벼슬과 후한 상을 내렸다고 한다.

 

그려조정에서는 김윤후에게 상장군의 큰벼슬을 주었다고 하는데, 김윤후는 자신은 몽골군과의 전투에서 활과 화살을 갖고있지 않았는데, 어찌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수가 있겠는가 라고 말하면서,

자신에게 내려진 상장군의 벼슬을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고려조정에서는 김윤후의 거듭된 거부에 상장군보다 훨씬 낮은 섭랑장으로 임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천민출신이 살던 처인성지역은 부곡에서 주현으로 승격되었다고 한다.

, 천민이었던 이곳 주민들은 자신의 고장이 주현으로 승격됨으로써, 천민의 신분에서 벗어나서 평민으로 신분상승을 하게 된 것이다.

 

상장군은 고려시대에 군대의 최고사령관직에 해당한다. 고려시대의 군대는 중앙에 2군이 있었는데, 응양군과 용호군이라고 하는 2군의 최고사령관이 바로 상장군이며, 상장군은 정3품의 높은 벼슬에 해당한다.

오늘날로 따지면 행정부의 각부의 차관보급의 높은 벼슬에 해당한다.

 

 

이렇게 김윤후가 자신은 전투에서 활과 화살을 갖고있지 않았다고 조정에 나와서 보고했다고 한다. 이러한 김윤후의 말 때문에 일각에서는 몽골의 원수 살리타이를 죽인 것은 김윤후가 아니라, 처인성의 이름없는 병사였을 것이라고 하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김윤후가 고려조정에 와서 이같은 보고를 한 것은, 그가 겸손의 덕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지극히 의례적인 말일 수도 있다고 본다.

 

평소에는 자신을 낮추고 도를 닦고있는 중의 신분이기 때문에, 자신의 공로를 낮추고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기 위해서, 행한 의례적인 말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승려 김윤후가 고려사열전의 기록에 나온 데로, 진짜 성밖에서 말에 타고있던 적장 살리타이를 활로 쏴서 죽인 인물이 맞을 수도 있다고 본다.

 

아뭏튼 승려 김윤후와 부곡민, 그리고 승병들이 일치단결해서, 살리타이의 몽골군을 물리치자, 기세등등했던 몽골군은 본국으로 후퇴해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물러났던 몽골군은 그 후에도 계속헤서 고려로 쳐들어왔으며, 고려와 몽골간의 피말리는 총 6차례 전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1932년 몽골군이 또다시 고려에 쳐들어왔는데, 몽골의 3차침입이 또다시 전개되었다고 한다.

몽골군의 3차침입 때부터 몽골군의 규모가 훨씬 더 커져서 대군이 처들어왔다고 하며, 몽골군은 한반도의 남쪽에 있는 전라도와 경상도지방까지 휩쓸고 다니면서, 그야말로 고려땅은 전국토가 초토화되어버리는 상황까지 내몰렸다고 한다.

 

이 몽고의 3차침입 당시에 황룡사9층탑이 불타서 없어져버렸을 정도로 전국토가 황폐화되었고, 백성들은 삶은 매우 피폐지게 되었다.

 

이렇게 전란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페해지고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지자, 고려조정에서는 불심의 힘으로 몽골군을 쳐부술 수 있다는 일념으로, 팔만대장경을 만들게 된다.

몽골군의 거듭된 침입으로 떨어질 데로 떨어진 고려백성과 군사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벌이는 일종의 사기진작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41년 몽골군의 3차침입을 지시했던 몽골의 우데이칸이 사망함으로써, 고려에 침입했던 몽골군은 다시 철수하게 되고, 유럽에서는 헝가리까지 진출했던 몽골군도 철수하게 되면서, 유럽이 몽골의 수중에 넘어가는 상황을 간신히 모면하게 된다.

 

그리고 몇해가 지나서, 몽골에서는 또다른 황제 구육칸이 즉위하였고 1247년에 몽골군의 제4차 침입이 전게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을 주도했던 구육칸이 2년 만에 사망함으로써, 다시 몽골군은 철수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1253년에 몽골은 5번째 고려침략을 또다시 시도하였다. 몽골군은 징키스칸의 조카인 예쿠대왕이 대군을 거느리고 고려로 쳐들어왔다고 한다. 몽골은 고려가 다시 개경으로 환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구실로 삼아서, 고려로 쳐들어왔다고 한다.

 

고려로 다섯 번째로 쳐들온 이번의 몽골군은 이전의 몽골군과는 다르게 규모면에서나 기술면에서나 막강한 군대였다고 한다.

이번의 몽골군은 이전과 달리 발석차와 운제 등 성을 공격하고 깨부술 수 있는 막강한 공성용무기를 갖고 왔으며, 지금의 수류탄과 비슷한 폭탄무기도 갖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금나라와 전쟁을 치르고 서쪽으로 사마르칸트나 러시아, 동유럽까지 진출해서 오랜 전쟁을 벌여왔던 몽고군은, 현지의 군사기술자를 포섭하고 수많은 군사적 경험과 지식축적이 이루어졌고,

성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각종 업그레이된 공성무기들을 개발해 내었던 것이다.

 

 

더욱이 몽골군은 자신들이 점령했던 거란족과 여진족의 병사들까지 군대에 포함시켜서, 역대 몽골군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막강한 전투력을 지닌 몽골군을 만들어 또다시 고려땅에 쳐들어온 것이다.

 

고려는 또다시 몽골의 대군을 맞아 일촉즉발의 위기에 휩쌓이게 되었고, 몽골의 대군은 파죽지세로 고려의 남쪽까지 물밑듯이 내려갔다.

 

다섯번째로 고려를 침공한 몽골군은 서경과 개경을 지나서, 충주 앞에 도달했는데, 바로 이곳에 있는 충주성은 고려의 전략적요충지라고 한다.

 

충주성이 몽골군에게 뚫리면, 한반도 남쪽에 있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곡창지대가 몽골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강화도에 있는 고려조정의 돈줄과 병참물자 지원은 완전 끊어지게 되기 때문에, 돈줄이 끊어지고 물자가 떨어진 고려조정은 강화도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고려조정이 강화도에서 나오면 그것은 항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려와 몽골간의 최대의 격전지가 되어버린 충주성에는 바로 2차 몽골전투의 영웅인 김윤후장군이 성주로 있었다고 한다.

김윤후장군은 처인성전투에 이어서 또다시 충주성전투까지, 몽골군과 2번씩이나 전투를 치르는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몽골군은 즉각 충주성을 포위해버리고 각종 공성무기를 총동원해서, 충주성에 맹공을 퍼부었다고 한다.

 

충주성의 성민들은 김윤후장군의 지휘아래 일치단결해서 결사항쟁을 벌였다고 한다. 김윤후장군과 충주성백성들은 몽골군과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끝도모를 항전을 계속 벌어나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몽고군과의 전투가 70일이나 계속되어가자, 성안에는 점차 식량과 물자가 떨어지고 성민들의 사기도 점차 떨어졌으며, 오랜 전쟁에 지친 백성들이 점차 동요하기 시작했는데, 김윤후는 동요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잡기위해서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고 한다.

 

 

김윤후장군은 성안에 있는 백성들을 모아놓고 몽골군을 물리칠 수 있도록 힘을 다해 싸운다면, 노비등 평민이든 그 신분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모든성민에게 벼슬을 내리게 해주겠다고 말하고는,

성안에 있는 노비문서들을 모두 불태워버렸다고 하며, 몽골군에게 빼앗았던 소와 말등을 모두 성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성민들의 사기가 다시 크게 불타올랐다고 하며, 김윤후장군을 중심으로 굳게 뭉친 성민들은 목숨걸고 몽골군과 싸워서, 결국 충주성을 방어하는데 성공했다고 하며, 몽골군대는 더이상의 전투를 포기하고 퇴각해버렸다고 한다.

 

처인성전투의 승리에 이은 김윤후장군의 뛰어난 리더쉽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으며, 충주성의 모든 백성들이 신분의 귀천을 초월해서, 한데 뭉쳐서 싸운 결과, 천하무적인 몽골의 대군을 물리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윤후가 이끄는 충주성 성민들이 세계최강의 몽골대군과 싸워서 이길 수 있던 요인은 바로 김윤후의 탁월한 리더쉽 때문이었다고 풀이할 수 있다.

 

 

김윤후는 고작 정6품의 낭장의 벼슬에 있었지만, 성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노비문서를 없애겠다고 하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고,

몽골군에게서 노획한 가축과 물자들을 신분을 초월해서 모든 성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줌으로써, 성민들의 단결의식을 고취하고 충성심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다른 수많은 성들의 성주들과 야전지휘관들이 몽골군이 처들어온다고 소식에 도망가는 경우가 허다한데,

김윤후는 충주성에 끝까지 남아서, 백성들의 마음을 잘읽고 그들의 마음을 보다듬고 격려하는 등 진정성있는 리더쉽을 보여줌으로써, 최강의 전투력을 이끌어내어 결국 몽골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지휘관 한사람의 역할이 어떤가에 따라서, 전쟁의 승패가 달라지게 되며, 나라를 위기의 순간에서 구출해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충주성전투의 승리로 김윤후는 처인성에 이어 두 번째로 몽골군을 물리쳤고, 상장군의 벼슬을 받았으며, 공이 있는 백성들은 노비뿐만 아니라 백정들이나 천민까지도 김윤후장군의 약속대로 상을 받았다고 하며 관노들은 모두 평민으로 승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충주성은 몽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포상으로 국원경으로 승격했다고 한다. 김윤후가 싸웠던 두 지역이 모두 승격이 이러졌는데, 처인부곡은 처인현으로, 충주목은 국원경으로 둘 다 승격이 이뤄진 것이다.

 

처인성전투의 승리에 이어 또다시 충주성전투의 승리를 거둔 김윤후는 그 높은 공이 인정받아서 동북면병마사로 승진하였으며, 그후 추밀원부사를 거쳐서 수사공 우복야까지 승진했다고 한다.

수사공 우복야는 정2품의 고위관직으로서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최고위직 벼슬이었다.

 

충주성전투에서 패배를 한 몽골군은 자기나라에서 내란까지 일어나자, 결국 본국으로 철수버리고 말았다.

 

김윤후는 평범한 승려의 신분으로 있다가, 갑자기 몽골군의 침략을 당한 위기의 순간에서 탁월한 리더쉽을 발휘해서, 막강한 몽골대군을 두 번이나 물리친 고려의 가장 뛰어난 지휘관이었으며, 대몽항쟁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뛰어난 지휘관 한사람이 백만명의 대군을 물리칠 수 있다는 옛말이 있다. 실제로 고려와 몽골간의 전쟁중에는 많은 야전지휘관들이나 장수들이 몽골군대가 쳐들어오자,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가거나, 피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게 일어났다.

 

 

국가의 녹을 먹는 야전지휘관과 군사들은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가 버리는 상황에서, 전혀 국가의 녹을 먹지않던 승려 한사람이 군인이 아닌 백성과 천민들을 규합해서, 병사보다 더욱 강인하고 용맹한 전투력을 만들어냈다고 하는 것은 정말 놀랍고도 기적같은 일이며, 김윤후의 뛰어난 리더쉽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본다.

 

김윤후의 2번의 승리는 정규군이 아닌 평범한 백성이나 천민들을 통해서 이룩한 쾌거라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데, 그의 뛰어난 지략과 지도력이 수많은 백성들을 살리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냈던 것이다.

 

세상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승려 김윤후는 위기의 순간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백성들을 살려낸 진정한 고려의 영웅이라고 할 만하다.

 

거란족이 고려에 침입했을 때에는 강감찬이 거란족을 물리친 최고의 영웅이라면, 몽골족이 쳐들어왔을 때에는 바로 김윤후가 몽골대군을 물리친 최고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종래에 우리나라에서는 외적을 물리친 3대영웅으로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을 꼽고 있지만, 이제는 한사람 더 추가시켜서 외적을 물리친 4대영웅으로 을지문덕·강감찬·이순신에 이어 김윤후의 이름을 올려놓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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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가짜민어가 국내산 참민어로 속여서 판매, 임자도 가격

 

우리가 회로 즐겨먹는 민어는 그 부드럽고 쫄깃한 맛이 천하일품인 인기좋은 횟감이자 생선이다.

 

민어의 원산지는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의 앞바다라고 하며, 이곳에서 맛좋기로 소문난 민어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 앞바다에서, 해마다 7월부터 9월까지는 임자도의 명물로 유명한 민어잡이가 한창 진행된다고 한다.

 

예로부터 삼복더위 때에 먹는, 가장 몸보신에 좋다고 알려진 민어는 작게는 30cm부터 크게는 1m가 넘는 것도 있을 정도로 씨알이 굵고 큰 물고기로 유명하다.


신안군 임자도의 어부의 말에 의하면요즘 민어가 부쩍 줄어들었다고 한다임자도 앞바다에서 하루에 민어를 10마리 잡았다고 하는데몇 년전까지는 하루에 50마리를 잡았는데그만큼 민어가 우리나라앞바다에서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날 것이나 익혀먹으나 어떻게 요리해서 먹어도, 몸에 좋은 것이 민어라고 하며, 조선시대 때에는 민어를 푹 끓여서 몸에 좋은 보양식으로 즐겨 먹었다고 한다.

 

또한 민어는 회감으로 아주 인기가 좋은 생선인데, 뽀오얀 속살에다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아주 일품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민어회를 즐겨찾는다고 한다.

 

 

민어는 한자로 백성민자로 사용하는데, 그만큼 민어는 예로부터 서민들이 즐겨 잡아먹던 대표적인 서민용 생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서민들이 횟감으로 탕으로 즐겨 먹어왔던 민어가 최근 그 어획량이 급속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수산물도매시장이나 생선횟집 등에서는 여전히 민어가 차고 넘치며, 많이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어획량이 줄어들었다고 어민들은 울쌍인데, 일반 시중에서는 민어가 대량으로 판매되고 있으니, 어떻게 된 일일까? 시중에서 유통되는 민어가 진짜 국내산 민어가 맞을까?

 

 

먹거리X파일제작진에 가짜민어에 대한 여러사람들의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한 네티즌이 생선횟집에서 민어회를 시켜서 먹었는데, 그 민어회는 중국산 점성어(홍민어)로서 진짜 민어가 아니라고 한다.

 

또다른 네티즌은 수산물종합시장에서 민어를 8만원 주고 사왔는데, 횟집사장의 말로는 그 민어는 진짜 민어가 아닌 중국산 홍민어(점성어)라고 하는데, 수산물시장에서 중국산 홍민어를 국내산 민어로 속여서 판매한다는 제보글이 여러건 올라왔다고 한다.

 

7월에서 9월까지 민어가 제철이라 맛이 가장 좋을 때이고, 여름철 폭염더위에 지친 이 시기에, 몸보신용으로 으뜸인 민어를 가장 많이 찾고 있는데, 가짜민어를 진짜민어인 것처럼 속여서, 판매하는 얄팍한 상혼이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또다른 제보자들의 말에 의하면, 서울의 생선횟집에서는 손님이 전라도사투리를 안쓰면, 가짜민어인 홍민어(점성어)를 내오고, 전라도사투리를 쓸 때에만 진짜민어를 내온다고 한다. 참민어가 전라남도 지방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비열하고 못된 악덕횟집주인들이 선량한 소비자들을 상대로 못된 사기를 치고있다고 한다.

 

  꼬리에 점이 있는 중국산 홍민어

 

네티즌여러분들 중에서도, 혹시 과거에 사먹었던 민어 중에 가짜민어를 진짜민어인 줄 알고 속아서 구입하거나, 사먹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먹거리X파일에서는 시중에 유통되는 민어가 가짜민어인지, 진짜민어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제작진이 출동해서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먹거리X파일제작진은 민어가 많이 잡히는 지역인 전라남도의 한수산시장으로 찾아가서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참고로 민어는 성질이 매우 급한 물고기라서 바다에서 잡히자 마자, 금방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민어를 잡으면, 곧바로 피를 빼서 얼음에 재워서, 선어상태로 유통시킨다고 한다. 민어는 대부분 활어상태로 유통시키지 않고 선어상태로 유통시키는 것이 관행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수산물종합시장이나 생선횟집에 가게되면, 수족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만일 민어가 수족관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면, 그 민어는 진짜민어가 아니라고 보면 정답이다. 진짜 국내산민어는 살아있는 상태로 유통시킬 수가 없다고 한다.

 

만일 민어가 잡힌 후에도 계속 살아있다면, 민어의 부레에 공기가 많이 들어가서, 수족관등에서 뒤집혀있게 된다고 한다. 민어의 부레에 공기가 많이 차서 뒤집혀지게 된다고 한다.

 

민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전라남도 지역의 한 수산물종합시장에서는 국내산 민어가 활기차게 거래되고 있었다. 수산물시장 상인의 말에 의하면, 진짜 국내산 민어의 가격은 1kg당 평균 5만원 정도라고 한다.

씨알이 굻고 상태가 좋은 국내산 민어의 가격이 1kg5만원 정도에 판매된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의 수산시장이나 생선횟집에서는 중국산 홍민어(점성어)를 국내산 민어로 속여서 판매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중국산 홍민어는 가격이 훨씬 싸기 때문인데, 일반 소비자들은 육안으로 중국산 홍민어(점성어)와 국내산 민어를 구별해지 못하기 때문에, 서울같은 대도시에서는 횟집 등에서 중국산 홍민어를 진짜민어인 것처럼 속여서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산 홍민어는 꼬리에 점이 있어서 점성어라고도 불리우고 있는데, 중국에서 양식한 것으로서 민어가 아닌 전혀 다른 어종이라고 한다.

 

전남의 수산물시장에서는 민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지역이어서, 국내산 민어만 거래된다고 하며, 가짜민어인 중국산 홍민어는 전해 거래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먹거리X파일제작진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역시 민어가 많이 잡히는 지역이라서 그런지, 전라남도 목포나 신안군지역의 전문횟집에서는 가짜민어인 홍민어를 판매하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민어가 많이 잡히는 본고장인 전남 목포나 신안군에서는 명성에 맞게 양심적으로 국내산 민어만을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전남 신안군의 민어전문점에서는 민어회 한접시에 45,000원씩 받고 있었다. 물론 이 식당에서 취급하는 민어는 진짜 국내산 민어라고 한다.

 

민어는 버릴 것이 하나 없는 알찬 생선이라고 한다. 민어는 회부터 껍질, 부레, 뼈까지 모두 요리해먹는 알뜰한 생선이라고 한다.

 

생선전문점이나 민어전문점에서 자연산 민어회를 주문하면, 커다란 접시에 포오얀 빛깔의 푸짐한 민어가 가득 나오며, 그리고 별도로 민어의 뻐다짐민어껍질부레까지 한상 가득 나온다고 한다.

민어는 우리나라 생선 중에서 유일하게 부레고기도 함께 나오는 생선이라고 하는데, 그 부레의 맛은 쫄깃하고 달콤함 맛이 아주 일품이라고 한다.

 

민어회의 속살의 색깔은 전반적으로 밝은 우유색이며, 등쪽부분에 약간 선홍색을 띄기도 한다.

만약 내가 찾아간 횟집에서, 민어회인줄 알고 먹은 생선의 빛깔이 밝은 우유색이 아니고 어두운 색깔이라면, 가짜민어인 중국산 홍민어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먹거리X파일의 조사결과, 서울의 여러곳의 횟집에서 이같이 가짜민어인 홍민어(점성어)를 진짜 민어인 것처럼 속여서, 판매하는 곳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민어전문점에서는 민어회 한접시를 시키면, 민어회와 민어뼈, 부레, 민어껍질이 한세트로 한꺼번에 나온다

 

국내산 민어회의 맛은 매우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난다고 한다. 마치 입속에서 녹는 것처럼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국내산 민어의 맛이라고 하며, 이 부드러운 맛 때문에 많은 식도락가들이 민어회를 즐겨 찾는다고 한다.

 

다른 생선회는 쫄깃한 식감이 느껴지지만, 민어회는 쫄깃한 식감은 거의 없고 부드럽고 고소한 식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만약 부드러운 식감보다는 쫄깃한 식감이 느껴진다면, 그 생선은 진짜민어가 아니라, 중국산 홍민어(점성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이런식으로 국내산 민어와 중국산 홍민어(점성어)는 식감이나 색깔에서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이렇게 민어가 많이 나고있는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거의 모든 생선횟집들이 국내산 민어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문제는 바로 서울 같은 대도시지역이라고 한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지역에서는 많은 식당등에서, 종종 중국산 홍민어를 국내산 민어로 둔갑시켜서 판매한다고 한다.

 

 

먹거리X파일에서는 이번에는 서울에 있는 수산물종합시장으로 찾아가서, 조사해보았다고 한다.

서울의 한 수산물종합시장의 한 상점에서 민어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상점에서는 수조관 안에 민어를 넣어서 활어상태로 판매하고 있었다.

 

상점주인의 말로는 수조안에는 국내산인 자연산 민어와 양식민어를 함께 넣어서 판매한다고 한다.

이곳 상점에서는 양식민어의 가격은 1kg 25,000원이라고 하며, 자연산(국내산)민어는 1kg35,000원에 판매한다고 한다.

 

수조관안에 있는 양식민어는 꼬리부분에 검은점이 나있는데, 이것은 중국산 홍민어의 형태와 똑같았으며, 수조안에 있는 자연산민어가 살아있는 활어의 형태로 보관되어 있었는데, 이 자연산민어의 국적이 심히 의심스러웠다.

 

 

국내산 민어는 잡히자마자 곧바로 죽기 때문에, 활어의 상태로 보관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국내산 민어는 활어가 아닌, 선어의 상태로 냉장상태로 유통되고 보관된다고 한다.

 

먹거리X파일제작진은 이 상점의 두종류의 민어를 모두 구입해서, 전문가에 의뢰해서 알아본 결과, 이 상점에서 국내산이라고 판매하는 자연산 민어와 양식민어는 모두 중국산 활어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상점에서 판매하는 자연산 민어는 국내산 아니라, 중국산 홍어가 분명한데 상점주인이 소비자들을 기만해서, 마치 국내산인 것처럼 속여서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점에서 판매한 국내산 민어를 횟감으로 만들어 살펴보았더니, 그 생선의 색깔이 우유색이 아니라, 검고 어두운 색깔이었으며, 맛은 부드럽다기보다는 매우 쫀득한 맛이 났다고 한다.

 

중국산 홍민어(점성어)의 색깔은 국내산 민어와는 달리 좀 어둡고 검붉은 빛깔이 난다고 한다. 또한 중국산 홍민어의 맛은 국내산과 달리 매우 쫄깃한 맛이 난다고 한다.

 

위의 생선이 중국산 민물민어이며 아래부분의 생선이 꼬리에 반점이 있는 중국산 홍민어다

 

전문가의 조사결과, 농수산물종합시장의 그 상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민어는 모두 중국산이라고 하며, 상점주인이 자연산 민어라고 소개한 것은 중국산 양식민어이며, 양식민어라고 소개한 것은 중국산 홍민어라고 한다.

 

그 상점주인은 더 많은 수익을 내기위해서, 중국산을 모두 국내산인 것처럼 둔갑시켜서 판매하고 있는 것이 먹거리X파일의 조사결과로 밝혀진 것이다. 

이번에는 먹거리X파일에서 서울에 있는 또다른 수산물종합시장을 찾아가서, 다른 생선상점을 조사해보았다.

 

그 상점에서도 민어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상점에서는 수조관안에 살아있는 활어의 두종류가 있었는데, 상점주인은 수조안에 있는 한 생선은 (국내산)자연산 민어라고 하며, 다른 생선은 양식민어라고 소개했다.

 

그 상점주인은 자신이 국내산(자연산) 민어라고 소개한 생선을 1kg5만원에 판매하고 있었고, 양식민어라고 소개한 생선은 1kg3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문가에 의해서 면밀하게 관찰한 결과, 그 상점주인이 국내산(자연산) 민어라고 주장한 생선은 국내산민어가 아니라 중국산 양식민어임이 밝혀졌고, 양식민어라고 소개한 생선은 중국산 홍민어임이 밝혀졌다고 한다.

, 그 상점주인도 다른 수산물시장의 상점주인과 마찬가지로, 두종류의 중국산 홍민어를 국내산 민어로 속여서, 판매하고있는 것이 적발된 것이다.

 

이처럼 수산물시장에서 상인들이 중국산 홍민어(점성어)나 중국산 양식민어를 국내산 민어로 둔갑시켜서, 판매하는 이유는 바로 욕심 때문이다.

 

사실 중국산 홍민어 1kg의 가격은 평균 25,000원 정도의 가격인데, 품질이 훨씬 좋은 국내산 민어의 가격은 1kg50,000 정도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중국산을 국내산 민어로 속여서 판매하면, 두 배 이상의 가격을 받을 수 있게되는 것이다.

 

결코 적지않은 수의 수산물시장의 생선상점들이 더 큰 수익을 내기 위해서, 이처럼 중국산 홍민어를 국내산 민어로 둔갑시켜서 판매하고 있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소비자들은 실제가격보다 두배 이상의 가격을 더 내면서, 골탕을 먹고있는 것이다.

 

    고기색깔이 진하고 검붉은 색이 나는 중국산 홍민어

 

여기서 중요한 팁 하나가, 수산시장이나 횟집에서 수조관에 넣어서 활어상태로 판매하는 민어는 모두 중국산 홍민어(점성어)라고 알면 정답이다.

국내산 민어는 벤뎅이처럼 잡히자마자 곧바로 죽기 때문에, 살아있는 활어상태로 유통되거나 보관될 수 없다고 한다.

 

서울같은 대도시에서는 이처럼 수산물시장이나 전문횟집에서 중국산 홍민어(점성어)를 국내산 민어로 속여서 판매하는 곳이 많다고 하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다고 본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국내산 민어와 중국산 홍민어(점성어)는 육안으로 충분히 식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국내산 민어와 중국산 홍민어(점성어)의 구별하는 방법

 

 

민어를 국내산 민어와 중국산 홍민어(자연산), 중국산 양식민어의 세가지로 구별할 수 있는데, 이 세종류는 외관으로 충분히 구별해낼 수 있다고 한다.

 

- 외모로 구별하는 팁 -

 

비늘모양

 

 

국내산과 중국산은 우선 비늘의 모양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비늘을 유심히 살펴보면 서로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국내산 민어는 비늘을 벗겨보면, 비늘이 얇고 작으며 투명한 색깔이 나지만, 중국산 민어는 비늘이 두껍고 크며, 진한 하얀색이며 불투명하다고 한다.

 

꼬리모양

 

 

국내산 민어는 꼬리의 결이 부드럽고 고우며 꼬리의 모양의 산모양으로 가운데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형태이지만, 중국산 홍민어는 정반대로 꼬리의 가운데부분이 오목하게 들어가있는 형태이다. 그리고 중국산 양식민어는 꼬리의 전체가 새까만 색깔이며 꼬리결도 불규칙하다.

   

- 속살의 색깔로 구별하는 팁(회로 먹을 때) -

 

 

국내산 민어는 속살이 밝은색이며, 환한 우유색깔로 되어있으며 등쪽부분만 선홍색을 띠고 있는데 반해, 중국산 홍민어와 중국산 양식민어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검붉은 색깔이라고 한다.

국내산 양식민어도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깔이라고 한다.

  

- 부레의 형태로 구별하는 팁 -

 

 

부레의 형태는 세종류의 민어가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인데, 국내산 민어는

부레가 아주 크고 굵으며, 탱탱한데 비해, 중국산 홍민어는 부레가 아주 작으며 아주 얇은 막처럼 되어있으며, 중국산 양식민어도 부레가 국내산보다 작으며 두께도 얇은 편이다이미지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국내산 민어의 부레는 아주 굵고 커서 배를 갈라보면, 육안으로 한눈에 국내산인 줄 확인할 수가 있다고 한다. 반면 중국산 홍민어의 부레는 얇은 막처럼 되어 있고 너무 얇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와같이 중국산 홍민어(점성어), 중국산 양식민어와 국내산 참민어는 그 외관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면일하게 살펴본다면, 비전문가라고 하더라도 국내산인지 중국산이지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중국산 홍민어는 꼬리부분에 굵고 큰 점이 나 있기 때문에, 충분히 구별해낼 수가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서울의 두곳의 수산물시장에 있는 상점들이, 중국산 홍민어를 국내산으로 속여서 판매하고 있는 것이 적발됐다.

수산물시장 뿐만아니라, 서울에 있는 일반 횟집에서도 중국산 홍민어(점성어)를 국내산민어로 둔갑시켜서 판매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먹거리X파일제작진의 조사결과, 서울에 있는 여러곳의 전문횟집에서도 중국산을 국내산으로 속여서 판매하는 것이 적발되었다고 한다.

 

일부 비양심적인 수산물시장의 상인들과 전문횟집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소비자들에게 값싼 중국산 홍민어를 국내산 참민어로 속여서, 판매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물론 다른 횟집과 상점들에서 양심적으로 판매하는 곳도 많이 있지만, 결코 적지않은 상점들과 횟집들에서 얄팍하게 소비자들을 속여서, 판매하고 있는 사례가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중국산을 국내산으로 속여서 판매하면서, 두배 이상으로 부풀려진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으니, 그 부풀려진 가격은 아무것도 모르는 소비자들이 부담하고 있으니, 소비자들만 억울하게 당하고마는 것이다.

 

먹거리X파일의 조사결과, 가짜민어를 국내산 민어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비양심적인 악덕상인들이 많이 있으니, 각별한 주의와 경각심을 갖고 민어를 구입해야만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민어의 꼬리와 부레 등 외관에서 국내산과 중국산을 구별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앞으로는 민어를 사거나 사먹을 때에는, 이 구별법을 잘 활용해서 더이상 억울하게 두배의 가격을 부담하지 않도록 해야하겠다.

 

소비자의 권리는 결코 상인들이 지켜주지 않으며, 우리들 스스로가 항상 경각심을 갖고 있을 때에만 지켜진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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