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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스의 호텔 켈리포니아가사에 얽힌 루머와 진실, 노래듣기

 

서프라이즈’ 717회에서는 이글스의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의 가사에 얽혀있는 미스테리하고 다양한 루머들에 관한 흥미로운 사연들이 공개되어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듣고 있는 팝송하면 떠오르는 곡이 하나 있는데, 70년대를 대표하는 팝송으로 지금도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애창하고 있는 이글스의 호텔캘리포니아는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고있는 명곡중의 명곡이다.

 

1976년도에 발표되어 그래미상 수상은 물론 빌보드차드의 넘버원을 휩쓸면서,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끌었던 팝송 호텔캘리포니아는 무명의 록밴드 이글스를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효자곡이라고 할 수 있다.

 

 

70,80년대 록밴드그룹인 이글스에게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었던 호텔캘리포니아’! 그런데 이글스가 팝송 호텔캘리포니아를 만들게된 특별한 사연이 공개되어서 큰 화제를 뿌리고 있는 중이다.

 

70~8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의 전설적인 록밴드그룹 이글스는 1971테이크잇 이지로 미팝계에 데뷔했으며, ‘데스페라도’ ‘온 더보더’ ‘데 베스트 오브 마이러브등 수많은 히트곡들을 발표하면서 높은 인기를 끌었는데, 순박한 전원의 정서를 컨트리록 장르로 표현해서, 가장 미국적인 팝뮤지선으로 평가받는 그룹이다.

 

그렇지만 이글스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노래는 바로 호텔 캘리포니아로 미국인들 뿐만아니라, 전세계인들에게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명곡중의 명곡이다.

 

 

매우 낭만적인 선율의 호텔 캘리포니아는 이글스 멤버 돈 펠더가 작곡하였고, 리드싱어 돈 헨리와 글렌프레이가 함께 작사해서 완성했던 곡인데, 돈 헨리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달콤하고 감미로운 기타연주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곡으로 수십년간 대중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왔다.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의 내용은 길거리를 걷던 나그네가 켈리포니아호텔를 방문한다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은 이글스가 캘리포니아호텔을 방문해 머물면서, 그호텔의 정취와 훌륭한 서비스에 큰 감명을 받고서 이곡을 만들어 불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호텔 캘리포니아가 발표된 얼마 후, 이 곡의 가사가 큰 논란거리로 부각되었다고 한다.

호텔 캘리포니아는 이글스가 머물렀던 그 켈리포니아의 호텔에 대한 감동을 받아 만들었다는 곡인데, 가사내용을 보면 매우 모호하고 애매한 내용으로 되어있다는 점이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호텔 캘리포니아의 가사내용을 살펴보면, ‘이곳은 천국인가 지옥인가’ ‘쇠칼로 짐승을 찌르지만, 짐승은 죽지않는다’ ‘왔던 길을 다시 찾아야해, 전에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야만 해, 등등의 내용으로 되어있어, 이러한 가사내용이 알려진 것처럼 캘리포니아호텔에 감동을 받아서 찬미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호텔 캘리포니아의 가사내용을 상세하게 살펴보니, 캘리포니아호텔을 찬미하는 내용이 전혀 아니라고 하며,

이글스의 다른 노래들은 가사내용이 매우 직관적이고 명료했던 데 반해, ‘호텔 캘리포니아의 가사내용은 너무 몽환적인 표현으로 가득차있다는 점도 매우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애매모호하고 몽환적인 내용으로 되어있는 호텔 캘리포니아를 두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게 된다.

일각에서는 호텔 캘리포니아는 마약에 중독된 삶을 표현하는 노래라고 주장하기도 했고, 다른 일각에서는 호텔 캘리포니아가 사탄을 숭배하는 노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노래 호텔 캘리포니아가 마약에 중독된 삶을 표현한다는 그 근거로 호텔의 첫번째 이니셜 ‘H’는 헤로인을 함축하고 있고. 두 번째 이니셜 ‘C’는 코카인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면서, ‘호텔 캘리포니아를 불렀던 이글스가 원래 먀약에 중독된 상태에서, ‘호텔 캘리포니아를 만들어 불렀다는 것이다.

당시 이글스가 마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퍼져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또다른 사람들은 호텔 캘리포니아는 원래 사탄을 숭배하는 노래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 근거로 노래가사에 “1969년 이후로 ’spirit”은 여기에 없습니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spirit'은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술을 의미하지만, 다른 의미는 성령을 뜻하는 단어이므로, 이글스는 성령이 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1969년도는 악마교의 교주 앤튼 르베이가 사탄성경을 완성한 해라고 하며, 이글스는 호텔 캘리포니아노래를 통해서 성령의 종말을 알리면서, 간접적으로 사탄을 숭배하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글스 맴버들은 평소에 악마교 교주인 앤튼 르베이와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호텔 캘리포니아가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주립 정신병원을 의미한다는 또다른 주장도 나오는 등, 워낙 크게 히트쳐서 널리 인기를 끌었던 호텔 캘리포니아에 대해서 여러가지 다양한 해석들이 난무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1996년 미국의 디트로이트 프리프레스 신문기사에 따르면,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켈리포니아호텔이 아니라, 멕시코에 있는 칼리포르니아호텔을 의미한다고 한다.

 

멕시코 칼리포니아주에 있는 토도산토스에 위치한 칼리포르니아호텔이 있는데, 이 호텔을 영어식 발음으로 고치면 호텔켈리포니아가 된다고 한다.

 

 

이 멕시코의 칼리포니아주에 있는 칼리포르니아호텔은 이글스가 무명이었던 시절에 머물렀던 호텔이라고 한다.

1970년초 당시 무명으로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연주생활을 했던 이글스가 우연이 이 칼리포르니아호텔에 투숙한 적이 있었는데,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던 이글스멤버들은 이 호텔의 아름다운 정취와 훌륭한 서비스에 완전 도취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칼리포르니아호텔의 정취에 마음을 빼앗겼던 이글스맴버들은 이 호텔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들었던 노래가 바로 호텔 캘리포니아라고 한다. 

이때 이후로 멕시코 칼리포르니아호텔은 호텔 캘리포니아를 탄생시키고 영감을 준 호텔이라고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그런데 1년 뒤에 칼럼니스트인 조 커밍스는 멕시코의 칼리포르니아호텔은 이글스의 노래 호텔 캘리포니아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고 한다.

조 커밍스는 이글스의 리드싱어 돈 헨리에게 직접 질문을 했다고 하는데, 돈 헨리는 이글스의 어떤 맴버도 칼리포르니아호텔에 간적도, 묵은 적도 없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부도위기에 몰린 멕시코의 칼리포르니아호텔의 매출을 올리고, 그지역 상권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지역의 부동산업자와 호텔업주가 서로 짜고 그같은 허위소문을 만들어서 퍼뜨린 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그 칼리포르니아호텔의 매출은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한다.

 

이렇게 이글스 최고의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에 대해서 수많은 루머들이 퍼져나가면서 큰 논란이 발생하자, 드디어 이글스의 리드싱어 돈 헨리와 베이스담당 글렌 프레이가 2007년도에 한 쇼프로에 출연해서, 그 궁금증을 직접 풀어주었다고 한다.

 

쇼프로에 전격 출연한 돈 헨리는 다음과 같이 호텔 캘리포니아를 만든 배경에 대해서 설명했다고 한다. 호텔 켈리포니아와 관련된 모든 루머들은 사실이 아니며, ‘악마숭배마약복용등은 더더욱 실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돈 헨리와 글레 플레이, 돈 펠더가 한밤중에서 차를 몰고 달려가던 중에 멀리서 보이는 도시의 황홀하고 휘황찬란한 야경에 흠뻑 도취되었으며, 그 순간 염감을 얻어서 호텔 캘리포니아의 가사를 썼다고 한다.

 

또한 미국건국 200주년이 된 해인 1976년도에 자본주의와 향락주의에 빠져있는 미국사회의 어두운 면과 방황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은유적인 화법으로 묘사했다고 한다.

 

이글스의 리드싱어 돈 헨리가 이렇게 TV쇼에 출연해서, ‘호텔캘리포니아를 만들 배경에 대해서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호텔 캘리포니아에 대해서 다양한 루머들이 떠돌아다닌다고 한다.

 

 

노래가 워낙 유명하고,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호텔 캘리포니아는 아직도 또다른 루머들을 양산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20세기 최고의 명곡 중 하나라고 평가받고 있는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가 너무나도 인기가 높고 유명해서 치르는 유명세가 아닐까 한다.

 

사탄숭배’ ‘마약중독’ ‘향락의 묘사등 다양한 루머와 논란을 양산하고 있는 노래 호텔 켈리포니아이지만, 76년도에 발표된 후, 무려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전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있는 명곡이라는 사실만큼은 전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630초라고 하는 장시간 이어지는 환상적인 전자기타의 선율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한번 감상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70년대부터 최근까지 시대와 세대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마법과도 같은 매혹적인 노래 이글스의 호텔 켈리포니아의 환상적인 호텔속으로 한번 빠져들어가 볼까요!

   

 

이글스의 호텔 켈리포니아노래 동영상

 

 

 

 

 

 

 

 

 

 

 

이글스의 호텔 켈리포니아’ 라이브 동영상 (1995년 이글스의 세계투어)

 

 

 

 

 

 

 

 

 

 

 

이글스(Eagles) -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 한글가사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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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의 전율의 강타자, 조지 포먼 대 조 프레이저, 캔 노턴 헤비급복싱

 

조지 포먼 총전적 - 817668KO 5

  

프로복싱 헤비급사상 최강의 강펀치를 휘둘렀던 조지 포먼은 70년대 혜성처럼 나타났던 전율적인 복서였다.

프로복싱 헤비급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70년대의 헤비급복싱세계에서는 지금과는 달리 실력이 뛰어나고 강한 선수들이 유독 많았다.

  

70년대에 프로복싱 헤비급을 주름잡았던 강력한 선수들이 여러명 존재했었는데, 저돌적으로 밀고들어가는 인파이팅의 교과서 조 프레이저, 당시 ko펀치를 휘두르면서 연승을 거둬나갔던 켄 노턴,

병역기피로 챔피언타이틀을 박탈당한 뒤에 다시 컴백한 무하마드 알리, 그리고 무시무시한 햄머펀치를 휘두르면서 싸우는 상대마다 닥치는 데로 쓰러뜨리는 조지 포먼이 70년대 헤비급 프로복싱을 주름잡았던 선수들이었다.

 

 

이들 중 제일 먼저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조 프레이저로, 그는 1970년 지미 엘리스와 헤비급타이틀전을 벌여서,

특유의 저돌적인 인파이팅을 펼쳐서 지미 엘리스를 무차별난타한 끝에 5회전에 지미 엘리스를 쓰러뜨리고 KO승을 거두면서 대망의 헤비급챔피언에 올랐다.

 

조 프레이저는 도쿄올림픽 헤비급 금메달리스트에다가, 헤비급챔피언에 오른 후 3차 방어전에 성공했으며, 292926KO 무패의 경이적인 기록도 갖고 있어서,

강펀치와 테크닉을 모두 갖춘 완벽한 챔피언으로 장차 롱런이 예상되던 챔피언이었으며, 조 프레이저에게 도전했다가 패한 선수명단에는 무하마드 알리도 있었다.

 

병역기피 이후 다시 제기해서, 야심만만하게 조 프레이저에게 도전장을 던진 무하마드 알리는 15라운드에 조 프레이저가 휘둘렀던 강력한 레프트훅을 얼굴에 맞고 그만 다운을 당하면서, 조 프레이저에게 치욕적인 판정패를 당하고 말았다.

 

 

헤비급챔피언이 될 때부터 전율적인 강펀치를 휘두르면서 상대선수들을 모주리 아작냈던 조 프레이저는 무하마드 알리마저 꺾어버림으로써, 당분간 그에게 맞설 선수는 없을 듯이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조 프레이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혜성과도 같이 나타난 괴력의 선수가 한명 있었는데,

조 프레이저처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프로에 데뷔하여 만나는 강자들을 모조리 KO로 쓰러뜨리면서 정상부근까지 치고올라온 선수였는데, 바로 조지 포먼이었다.

 

조지 포먼은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 출전해서 헤비급복싱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후에 곧바로 프로에 데뷔했는데, 처크 웨프너, 조지 추발로, 분 커크만 같은 헤비급 강자들을 닥치는 데로 KO시키면서, KO머신이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막강한 도전자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당시 373734KO라고 하는 눈부신 전적을 쌓아올린 조지 포먼은 더 이상 적수가 없자 헤비급챔피언 조 프레이저에게 도전장을 던졌고,

당시 조 프레이저도 무하마드 알리마저 깨버린 마당에 더이상 적수가 될 만한 도전자가 없는 상태에서 조지 포먼이라는 거물급도전자를 아주 흔쾌히 맞아주게 된다.

 

최고수준의 선수 무하마드 알리를 쓰러뜨리고 나서, 더 강한 도전자를 원했던 조 프레이저, 챔피언외에는 더이상 싸울 상대가 없었던 헴머펀치의 소유자 조저 포먼은 드디어 19731월 자메이카의 킹스턴에서 대망의 타이틀전이 벌이게 된다.

그런데 그당시 많은 도박사들은 펀치력과 테크닉을 골고루 겸비하고 있는 조 프레이저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조지 포먼이 펀치력와 힘을 좋지만, 노련미가 부족하고 다양한 공격기술이 뒤지기 때문에, 공격과 수비가 안정적인 조 프레이저에게 배팅을 건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조 프레이저

 

그런데 경기결과, 엄청난 대이변이 벌어졌다고 한다.

1973년 자메이카의 킹스턴에서 벌어진 조 프레이저 대 조지 포먼간의 헤비급타이틀전에서 조 프레이저는 제대로 된 펀치 한번 뻗어보지도 못하고, 조지 포먼의 메가톤급 강펀치를 무수히 얻어맞고, 무려 6번의 다운을 당하면서 2라운드에 치욕적인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아무도 예상을 못했던 헤비급 프로복싱 사상 엄청난 쿠테타가 발생한 것이다. 

최고레벨의 선수 무하마드 알리마저도 다운시키면서 제압한 완벽한 챔피언 조 프레이저가 신출내기 조지 포먼에서 완전히 아작난 채, 2KO패로 무너지고 말았다.

 

무하마드 알리를 꺾고 난후, 장기집권이 예상되었던 인파이팅의 대가 조 프레이저가 이렇게까지 처참하고 끔찍하게 무너져버린 것은 난생 처음이었으며, 아무도 예상 못했던 결과였다.

 

조 프레이저는 조지 포먼의 강펀치를 샌드백처럼 두들겨맞다가, 1회전에 3번 다운을 당했으며, 2회전에도 또다시 3번의 다운을 당한 끝에 완벽하게 KO패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강하고 맷집 좋았던 조 프레이저를 6번이나 쓰러뜨릴 정도로 두들겨팬 끝에, 세계헤비급챔피언 타이틀을 보기좋게 빼앗아간 불세출의 강타자는 조지 포먼이었다.

 

공수가 완벽한 챔피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조 프레이저가 이렇게까지 맥을 쓰지도 못하고 처참하게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펀치력의 차이였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다. 조 프레이저는 2926KO의 높은 KO율을 기록할 정도로 나름 강펀치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조지 포먼의 펀치력은 조 프레이저보다 한 수 위였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다.

 

조 프레이저는 상대방을 코너에 가둬놓고 연타를 퍼부어서 상대를 KO시키는 반면, 조지 포먼은 왠만한 선수들은 단 한두 방의 펀치를 적중시켜서 KO시키는 스타일로 두 선수간에도 펀치력의 차이가 엄청났다.

 

 

또한 조 프레이저는 키가 작고 리치가 짧기 때문에, 최대한 상대선수의 가슴팍에 달라붙어서, 좌우훅을 휘둘러서 상대방을 지치게 하는 전법을 쓰지만, 그러한 전법이 조지 포먼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점도 패인이다.

 

조지 포먼은 자꾸만 달라붙는 조 프레이저를 두손으로 밀어서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놓았기 때문에, 수많은 강자들을 쓰러뜨렸던 조 프레이저의 인파이팅기술은 전혀 써먹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조 프레이저의 얼굴에 조지 포먼의 주특기인 강력한 어퍼컷이 그대로 작렬해서, 조 프레이저는 엄청난 타격을 입고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조지 포먼의 강펀치는 링전체가 흔들릴만한 강력했고, 파괴적이었으며, 그의 메카톤급 강펀치를 무수히 얻어맞은 조 프레이저는 2라운드에 KO당한 것이 오히려 고마울 정도였다. 왜냐하면 더 이상 안맞아도 될테니까~

 

  어퍼컷 단 두방에 켄 노턴을 ko시키는 조지 포먼

 

조지 포먼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무하마드 알리를 다운시키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조 프레이저는 조지 포먼에게 완전 발목이 잡혀서 헤비급챔피언 타이틀을 빼앗

겼는데,

그 후 무하마드 알리와의 대전에서 패하고, 또다시 1975년도에 북미챔피언 결정전을 놓고서 조지 포먼과 또다시 2차전경기를 치루었지만, 펀치력의 차이는 그대로 노출시킨 채, 5라운드에 KO패하고 만다.

 

조 프레이저를 KO로 꺾고 당당히 세계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조지 포먼은 1차방어전에서 조킹 로만을 숨쉴틈 없이 두들겨팬 후, 1라운드에 KO시켜 버렸다.

 

그리고 조지 포먼은 또다른 강펀치의 소유자로 승승장구하던 켄 노턴을 상대로 2차 방어전을 치루었는데, 무하마드 알리의 턱을 깨고 스타덤에 올랐던 켄 노턴이었지만, 조 프레이저와 마찬가지로 펀치력에서 엄청난 수준차이만을 노출시킨 채로 2라운드에 KO패당하고 만다.

 

 

이처럼 조지 포먼은 당대에 강펀치의 보유자로 명성을 떨쳤던 조 프레이저와 캔 노턴을 군말없이 2회 이내에 완벽하게 KO로 제압했다.

그 외에도 펀치력이 좋다고 알려진 많은 정상급 선수들이 조지 포먼과의 대결에서 자신의 펀치를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모두 다 초반에 조지 포먼의 강력한 헴머펀치를 맞고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강펀치에도 수준차이가 난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조지 포먼은 남들이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최고레벨의 강펀치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70년대 중후반에 또다른 강펀치의 소유자로 이름을 떨쳤던 론 라일과 게리 쿠니 같은 뛰어난 선수들도 조지 포먼과 대결을 벌여서, 모두다 보기좋게 KO패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70년대에 무시무시한 강펀치를 휘둘렀던 챔피언 조지 포먼은 1975년도에 다시 재기에 성공한 테크니션 무하마드 알리를 상대로 3차방어전을 벌였는데, 알리의 치고빠지는 전략과 힘빼기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는 어이없게도 8라운드 KO패해 헤비급타이틀을 빼앗기고 만다.

 

 

그렇게도 무시무시한 핵주먹을 휘두렀던 조지 포먼이 무하마드 알리와의 대전에서는 왜 재대로 된 펀치를 발휘하지도 못한 채, 무너지고 만 것일까?

 

1975년도에 벌어진 조지 포먼 대 무하마드 알리의 경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난무하고 있는 중이며, 의혹스러운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힘만을 앞세운 조지 포먼이 무조건 개념없이 치고 들어가다가, 무하마드 알리의 치고빠지는 전략에 말려들어서, 중반전 이후 힘이 너무 빠져서 KO패하고 말았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또다른 일각에서는 당시 헤비급프로복싱의 흥행의 보증수표였던 무하마드 알리를 헤비급챔피언으로 만들어놓기 위해서, 돈 킹 프로모터가 만들어놓은 각본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도 펀치력이 막강했고 펀치의 적중률도 상당히 좋았던 조지 포먼이 무하마드 알리와 싸울 때에는 거의 펀치를 적중시키지도 못하고, 내뻗는 펀치의 위력도 상당히 떨어져있었다.

 

 

조지 포먼이 조 프레이저와 켄 노턴과 싸울 때에 구사했던 펀치력과도 너무나 차이가 많다는 것을 육안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조지 포먼이 2013년경에 기자에게 털어놓았던 사실이 있는데, 그당시 자신은 약물에 중독되어서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경기전에 스텝이 갖다준 음료를 마셨는데, 그안에 약물(일종의 수면제)이 들어있었다고 하며, 그것을 마시고 링위에 올라갔을 때에는 온몸의 힘이 완전 빠져버려서, 전혀 힘을 쓰지도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 당시 알리가 최고의 인기선수였기 때문에, 헤비급프로복싱의 흥행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하마드 알리가 챔피언이 되는 것이 중요했고,

헤비급흥행을 담당했던 돈 킹의 공작에 의해서, 조지 포먼은 약물중독에 걸려서 링위에 올라가 전혀 힘을 쓰지도 못한 채로 경기하다가, 억울하게 KO패당하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조지 포먼의 일방적인 주장이며 명백한 증거자료는 남아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조지 포먼의 그당시 무시무시한 강펀치의 위력이 유일하게 무하마드 알리에게 통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조지 포먼의 약물중독설은 어느정도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그럼 이제는 조지 포먼의 전성기시절에 강펀치를 휘둘렀던 경기동영상들을 감상해보도록 하자! 조지 포먼 대 조 프레이저의 경기와 켄 노턴의 경기를 연속으로 감상해보도록 하자.

 

 

조지 포먼 대 조 프레이저 헤비급 타이틀전경기 동영상

 

1차전 경기동영상

 

 

  

 

 

 2차전 경기동영상

 

 

 

 

 

조지 포먼 대 켄 노턴 경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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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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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 프로복싱 헤비급 최강의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 74세로 별세, 소니 리스튼, 브라이언 런던과의 명경기

 

무하마드 알리의 전적 - 5637KO 5

소니 리스튼 총전적 - 545039KO 4

 

세계헤비급복싱 역사상 최고의 복서로 불리우는 무하마드 알리가 201663일날에 병원에서 7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한다.

 

알리의 대변인 밥 거닐은 무하마드 알리가 파킨슨병이 악화되어 합병증인 호흡기질환으로 74세 나이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고 한다.

  

프로복싱 헤비급영웅 무하마드 알리는 은퇴한 후 3년 만인 1984년도에 파킨슨병에 걸렸고,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해왔으며,

미국 애리조나주의 피닉스의 한병원에서 그동안 생명보조장치에 의존해 투병생활을 해왔다고 하며, 그가 임종을 맞던 병원에는 그의 72녀의 자녀들이 함께 있었으며, 그의 네 번째부인 로니가 그의 임종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프로복싱 헤비급의 영원한 영웅인 무하마드 알리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전세계의 수많은 유명인사들의 추모메시지가 줄을 이어 발표되었다고 한다.

미들급과 슈퍼미들급, 헤비급까지 석권했던 복싱영웅 로이 존스 주니어는 무하마드 알리의 죽음에 무척 애석하지만, 위대한 복서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가게되 감사한다는 애도의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21세기 프로복싱 역사상 아마도 최고의 아이돌을 한명 꼽자면 분명히 무하마드 알리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복싱전문가들은 무하마드 알리를 가리켜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복싱천재라고 평가한다.

 

 

무하마드 알리가 활동할 당시에 헤비급프로복싱이 최고의 스포츠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는데, 지금의 UFC경기보다도 훨씬 더 높은 인기를 구가했으며,

60~70년대 당시 헤비급프로복싱의 인기가 높았던 이유는 바로 천재복서이자 최고의 테크니션인 무하마드 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웃복싱의 교과서라고 할 만큼 무척 빠른 스피드와 눈부신 위빙과 화려한 테크닉, 전광석화와도 같은 원투스트레이트펀치를 구사했던 무하마드 알리는 화려한 아웃복싱으로 구사하면서,

60~70년대의 헤비급무대를 완전 석권했으며 최고의 테크닉을 선보주면서, 프로복싱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렸던 주역이었다.

 

무하마드 알리가 활동했던 60~70년대의 헤비급프로복싱은 단순한 스포츠를 뛰어넘어서 하나의 화려한 예술무대나 다름 없었다.

 

그만큼 무하마드 알리의 복싱기술은 현란했으며 화려했고 지금의 아이들스타들의 퍼포먼스보다도 더 멋지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펼쳐보여줬다.

험악한 복싱경기를 치루면서 저렇게 화려하고 멋진 모습을 선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하마드 알리의 눈부실 정도로 화려하고 뛰어난 테크닉 덕분이었다.

 

 

20세기 헤비급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컬한 복싱경기를 펼치면서, 무하마드 알리는 헤비급세계챔피언자리에 세 번이나 오르는 신기록을 세웠으며, 통산 19차 세계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프로복싱 헤비급의 최다 타이틀방어인 25차 방어에 성공한 조 루이스에는 약간 못미치지만, 조 루이스에 이어서 세계 두 번째로 장수한 위대한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무하마드 알리였다.

 

무하마드 알리는 세계헤비급챔피언에 세 번씩이나 오르는 수훈을 거뒀는데, 1964년 불세출의 강타자 소니 리스튼을 7TKO로 꺾고 첫번째 세계헤비급챔피언에 올랐으며, 1974년에 조지 포먼을 8회에 KO시키고 두번째로 세계챔피언에 올랐으며,

19789월에는 자신의 타이틀을 빼앗아갔던 리언 스핑크스와의 재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둬, 헤비급타이틀을 세번째로 타이틀 획득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무하마드 알리는 1981년 트레버 버빅과의 논타이틀전에서 판정패한 뒤에, 프로복싱무대에서 완전 은퇴했다.

 

 

통산전적은 5637ko 5패의 전적을 보유했던 무하마드 알리는 그의 생애 가장 눈부셨던 경기는 세계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던 소니 리스튼과의 경기와 조지 포먼과의 경기를 꼽을 수 있다.

 

 

무하마드 알리 vs 소니 리스튼 - 1964년 세계헤비급 타이틀전경기

 

1964년 당시 헤비급의 강펀치의 소유자로 유명한 세계헤비급챔피언인 소니 리스튼에게 도전했던 무하마드 알리는 대부분의 도박사들이 질 것이라고 예언한 불리한 상황에서,

눈부신 위빙과 빠른 푸드웍을 이용해 소니 리스튼의 강펀치를 모두 피하고, 화려하고 완벽한 아웃복싱을 펼친 끝에, 챔피언 소니 리스튼을 7회에 tko로 재압하고 세계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60년대의 소니 리스튼이 얼마나 막강한 챔피언이었는가 하면, 소니 리스튼이 60년 이후부터 이룬 그의 전적이 2625KO승이라는 90%에 가까운 그의 KO기록을 보면 금방 실감할 수가 있다.

 

또한 소니 리스튼은 60년대초반의 헤비급 영웅이었던 플로이드 패터슨을 2번씩이나 1회전에 KO시켰던 전력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소니 리스튼은 그당시 살인펀치를 휘두르는 전율의 강타자였다. 70년대에 등장했던 강펀치의 소유자 조지 포먼에 버금가는 강펀처였다.

 

 

그렇게 기세등등했던 소니 리스튼과의 헤비급타이틀전에서 무하마드 알리는

눈부신 위빙기술로 그의 강펀치를 피하고, 빠르고 강력한 좌우스트레이트펀치를 휘둘러서, 소니 리스튼을 7KO로 제압하고 세계헤비급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무하마드 알리는 헤비급챔피언이 된 후, 소니 리스튼과의 리턴매치를 가졌는데, 2차전경기에서는 1라운드에 소니 리스튼에게 레프트어퍼 단한방으로 KO시켜서, 전세계의 복싱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헤비급 역사상 3대 강펀치의 소유자로 꼽히는 선수는 60년대의 소니 리스튼, 70년대의 조지 포먼, 80~90년대의 마이크 타이슨을 꼽을 수 있는데, 무하마드 알리는 이들 중 2명의 강펀처를 KO로 제압했는데, 바로 소니 리스튼과 조지 포먼이다.

 

이렇게 당시 최강의 강펀치를 가졌다고 소문났던 헤비급챔피언 소니 리스튼을 꺾고 헤비급세계챔피언에 올랐던 무하마드 알리는 이후 1967년도까지 총 8차례 헤비급타이틀 방어에 성공했으며,

그후 베트남 참전 징집에 대해 양심적 병역거부로 헤비급타이틀을 박탈당하고 3년간 무관으로 지내다가, 1970년도에 다시 재기전을 치렀는데, 제리 쿼리를 3회전에 KO시키고 다시 헤비급무대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5374세의 나이로 별세한 위대한 헤비급챔피언 무하마드 알리를 추도하는 마음으로, 그가 생전에 치뤘던 가장 멋진 두경기를 올려서 안타깝게 이세상을 떠난 무하마드 알리에 대한 애석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다.

영원한 헤비급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의 명목을 빕니다!’

 

무하미드 알리 대 소니 리스튼과의 헤비급타이틀전 1차전경기 동영상 - 1964224

 

 

 

 

 

 

무하미드 알리 대 소니 리스튼과의 2차전 경기 동영상 - 1965년

 

 

 

무하마드 알리 VS 브라이언 런던의 경기 동영상 - 196686

 

1966년도에 치러진 무하마드 알리의 헤비급 타이틀 방어전으로 알리의 경기 중 가장 화려하게 가장 테크니컬한 최고의 경기로 손꼽히는 명경기이다.

 

무하마드 알리는 1회전에서 3회전까지 도전자 브라이언 런던에게 카메라로 포착할 수 없을 정도의 스피드한 고속펀치를 연속으로 퍼부으면서, 그의 화려하고 빠른 타격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상대방의 펀치는 위빙으로 모두 피하고 자신의 빠르고 테크니컬한 연속펀치는 모두 적중시키는 최고의 테크니션다운 면모를 보여줬던 명경기이다.

 

이 경기를 보면 왜 무하마드 알리가 헤비급 역사상 가장 뛰어난 테크니션인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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