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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08 ‘다빈치코드의 암호’ 예수의 결혼설, 아내 막달라마리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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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코드의 성배 예수, 최후의 만찬 막달라 마리아의 정체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몰고왔던 다빈치코드에서 예수가 결혼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서 큰 놀라움을 주고 있다.

 

기독교에서 신성시되는 존재 예수가 과연 다빈치코드의 내용대로 실제로 결혼을 했는지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역사적 근거들을 있다고 하는데,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상의 구원자로서 신성시되고 있는 예수의 결혼설이 왜 흘러나오고 있는지, 그 근거와 실체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될 것만 같다.

 

이탈리아의 밀라노시에는 산타마리아 벨라그라치수도원이 있는데, 그곳에는 매우 유명한 벽화가 벽에 걸려있는데, 바로 최후의 만찬으로 중세의 천재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495년도 그린 작품이다.

 

 

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그림 최후의 만찬에는 예수가 처형당하기 전 12명의 제자들 함께 마지막 만찬을 즐기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예수의 바로 옆에는 낮선 인물이 앉아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다빈치코드를 저술한 작가 댄 브라운의 주장에 따르면,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오른쪽 옆에 앉아있는 인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남자가 아니라 여자인 것을 알 수가 있다고 한다.

 

그동안 기독교인들은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12명의 제자들은 모두 남자라고만 알고있었는데, 그리고 예수의 오른쪽 옆에 앉아있는 사람은 예수의 제자 요셉이라고만 알려져왔다.

그런데 댄 브라운을 중심으로한 일부의 학자들은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오른쪽옆에 앉아있는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녀는 놀랍게도 막달라 마리아라고 한다.

 

 

16세기의 천재과학자이자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명화 최후의 만찬을 세밀하게 다시 살펴보니, 정말 예수의 옆에 앉아있는 인물이 수염도 없고 얍상하게 생긴 것이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림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이 여자의 정체는 무엇이며,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포도주를 따라마셨다는 성스러운 잔인 성배는 왜 그리지 않았던 것일꺄?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의 저자 마가렛 스타버드의 설명에 의하면, ‘성배의 철자를 ‘G'자를 기준으로 나누면, ’SAN GRAAL‘이 되는데 이 단어는 고대프랑스어로 고귀한 혈통을 잉태한 여성예수의 후손을 임신한 여성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배는 단순히 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혈통 즉, 예수의 혈통을 잉태한 여성, ,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하고 있다.

 

작가 댄 브라운, 마가렛 스타버드 등의 주장에 의하면,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사용했다는 성배는 진짜 잔이 아니라, 바로 예수의 아내인 막달라 마리아를 의미한다는 내용이어서, 엄청난 놀라움을 주고있는 것이다.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신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성배를 상징적인 의미로 표현했는데, 바로 예수의 임신한 아내를 진정한 성배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을 반복해서 살펴보더라도, 예수의 오른쪽옆에 있는 인물은 수염도 없고, 이목구비가 곱상하게 생겼으며 얼굴이 갸름한 모습이어서 남자보다는 여자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여성의 모습을 한 인물이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며, 더욱이 그녀는 예수의 자손까지 잉태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놀랍고도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부의 학자들의 주장이며, 검증된 사실은 아닌 것이다.

   

예수결혼설은 매우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80년대부터 일부학자나 여러 작가들에 의해서 계속 제기되어왔던 사안이라고 한다. 또한 예수결혼설은 고대시기에도 이집트등지에서 퍼졌던 설이라고 한다.

또한 예수결혼설은 최후의 만찬이라는 책 이외에도 성혈과 성배등 여러권의 책들에서 주장되어 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책들에서 주장하고 있는 예수의 결혼설은 사실이란 말인가? 정말로 창녀인 줄 알았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부인이란 말인가?

 

 

2000년 넘게 수많은 기독교인들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성스러운 존재인 메시아로 생각해왔고, 그의 존재 자체는 넘사벽이었다.

이렇게 2000년 넘게 이어져왔던 예수에 대한 이미지가 통째로 되바뀔 수도 있는 주장인데, 과연 예수가 결혼했다고 하는 근거들은 존재하는 것인가?

 

전문가들에 의하면, 예수의 결혼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근거들은 많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성경기록에서 예수의 발에 기름을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닦아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녀는 창녀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라고 하는 것은, 성경의 원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카톨릭 대주교가 5세기 말에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1969년 로마교황청은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가 아니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공표했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가 아니라 예수의 아내라는 첫번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945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그 첫번째 근거라고 한다. 최후의 만찬을 살펴보면, 예수가 십자가처형을 당하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만찬을 가진 최후의 만찬에서 그가 사용했다는 잔이 없다고 하는 점이다.

사람들이 성배라고 부르는 당연히 그려져야할 그 잔이 최후의 만찬에는 그려져있지 않다.

 

 

성배는 그려져있지 않지만, 대신 최후의 만찬에는 성배를 상징하는 암호가 표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바로 예수와 그의 오른쪽 옆에 앉아있는 인물사이에 ‘V’가 숨겨져있다고 한다. 

‘V’는 레오나르드 다빈치 이전의 시기부터 여자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널리 쓰였다고 한다.

 

바로 예수 바로 옆에서 ‘V’를 그리며 앉아있는 이 인물이 성배를 의미하는 예수의 부인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며, 또한 이 여성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암호도 이 그림안에 숨겨져 있다고 하는데,

예수와 옆에 앉아있는 여성의 라인을 이어가면 ‘M’자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고 한다. ‘M’자는 막달라 마리아를 의미하는 영문이니셜이다.

 

 

이렇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그림속에 예수의 결혼설과 예수의 아내가 막달라 마리아임을 표시해주는 비밀코드를 숨겨놓았으며,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다빈치코드라고 부르곤 한다.

 

예수의 결혼설을 나타내주는 두번째 근거로 이집트의 나그함마디 복음서를 들고 있다. 1945년도에 이집트 나그함마디지역에서 13종의 복음서가 출토되었는데, 이 나그함마디복음서는 우리가 보고있는 기독교복음서보다 더 오래전에 기록된 것이라고 한다.

 

 

나그함마디복음서 안에 있는 빌립보 복음서 6335절의 내용을 보면,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자주 입을 맞추곤 하였는데, 제자들은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를 더 사랑하는 것을 시기하였다고 하며, 불평을 하였다는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다.

 

또한 빌립보 복음서 6432절에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결혼의 신비는 위대하며, 그것 없이는 세상이 존재할 수가 없다고 얘기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고 한다.

 

당시 남녀차별이 엄격한 유대사회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입을 맞춘다는 것은 부부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하며,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 중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라고 하며, 예수가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선생이라는 존칭을 받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근거로 당시 예수는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카톨릭에서는 예수의 결혼사실을 비밀에 부쳤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담겨있는 나그함마디 복음서를 로마교황청에서 숨기고 비밀을 유지했다고 한다.

 

예수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카톨릭에서 숨겨왔던 이유는, 이러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에는 기독교사회에 엄청난 파장이 불어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예수는 신의 아들로서, 성스럽고 거룩한 존재로만 알려져왔는데, 그런 예수가 결혼을 했다고 알려지면, 예수는 신성한 지위가 무너지고 예수는 그냥 기독교지도자 중 한사람으로 인격화되어 버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계속 예수의 결혼사실을 숨겨왔다는 것이다.

 

  마가렛 스타버드

 

예수의 결혼설의 단서를 제공해주는 나그함마디 복음서는 뒤늦게 1945년도에 발견되었는데, 이 나그함마디 복음서는 기독교초기 시절인 기원후 100년에서 200년 사이에 이집트지역에서 발행되었던 기독교의 복음서인데,

아마도 로마교황청에서 나그함마디 복음서를 비롯해서 예수의 결혼설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다른 모든 복음서나 기록들도 모두 찾아내어서, 없애버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렇게 성배는 예수가 사용한 잔이 아니라, 예수의 고귀한 혈통을 잉태한 여인 즉, 막달라 마리아라는 것이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세번째 근거는 프랑스 남부지방에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전승설화이다.

 

템플기사단의 진실의 저자인 린 피크넷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가 처형되고 난 후에, 막달라 마리아는 임신한 상태로 예루살렘을 탈출해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갔다가, 다시 프랑스 남부지방에 있는 마르세이유로 갔다고 한다.

 

 

그런데 프랑스 남부지방에는 막달라 마리아교회를 비롯해서, 막달라 마리아동상이 유별나게 많이 있다고 있다.

 

전승설화의 내용에는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아이를 데리고 이집트에서 잠시 지내다가, 다시 프랑스 남부지방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중세시대에 프랑스남부지방과 지중해 연안지역에서는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었다는 설이 널리 퍼져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지역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도 예수 몾지않게 신성화되었으며, 프랑스 남부지방에는 막달라 마리아동상이 많이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를 섬기는 막달라 마리아성당도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프랑스남부지역에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이름의 마을도 있다고 하는데, 이곳에 있는 한 성당에는 검은 피부를 가진 사라라는 이름의 동상이 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기를 데리고 배를 타고 이곳지역으로 피신해왔다고 하며, 그후에 그녀는 자손들과 함께 이곳 프랑스 남부지역에서 정착했다는 전승설화가 내려온다고 한다.

이 검은 피부를 가진 사라라는 동상은 바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예수의 딸이라고, 작가 마가렛 스타버드는 주장하고 있다.

이곳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사라의 동상이 검은색으로 되어있는데, 그이유는 그같은 전승설화가 이집트를 거쳐서 왔기 때문이며, 이집트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검은피부를 가진 아랍인종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프랑스 남부지역에 이주해와서 정착하게된 막달라 마리아와 그의 딸 사라는 그후 이곳 지방에서 후손을 번식시키게 되는데, 그들의 후손이 바로 고대 프랑스왕조인 메로빙거왕조라고 한다.

 

프랑스의 고대왕조인 프랑크왕국의 전반기를 통치했던 왕조가 메로빙거왕조로서, 481년부터 751년까지 프랑스를 다스렸던 왕조이다. 이 메로빙거왕조의 주인공들은 바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들이라고 한다.

 

메로빙거왕조의 첫번째 왕이었던 메르벵은 그의 어머니가 물고기를 통해서 임신했다고 알려졌는데, 물고기는 바로 예수의 상징이라고 한다.

초기 기독교도들이 물고기문양을 그려서, 자신들의 종교를 표시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있는 사실이다.

 

 

, 메로벵의 어머니가 물고기를 통해서 메로벵을 임신했다는 것은, 메로벵의 아버지가 예수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메로빙거왕조는 물고기의 문양을 자신들 가문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을 근거로 해서 예수의 결혼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메로빙거왕조가 바로 예수의 혈통 즉, 후손들이라고 보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가 프랑스 남부지방에 정착했다는 더 확실한 근거가 있다고 한다.

프랑스 남부지역에 있는 렌르 샤토마을에는 막달라 마리아를 위해서 지어진 성당이 있다고 한다. 이 성당은 소니에르신부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헌액하기 위해서, 지은 성당이라고 한다.

 

1891년 이곳으로 오게된 베랑제 소니에르신부는 렌르 샤토성당의 보수공사를 하던 중에, 지하에서 양피지문서 두장과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대주교에게 갔다준 후에 갑자기 큰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소니에르신부는 성당옆에 막달라 마리아탑도 만들었다고 하며, 평생 부자로 살았다고 한다. 그는 도대체 렌르 샤토성당 지하에서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최근에 이 성당에 전문가들이 와서, 성당 지하를 특수전파장비로 탐지했다고 하며, 이 성당 지하에는 두개의 무덤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두개의 무덤은 왕가의 무덤이라고만 알려졌으며, 더이상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소니에르신부는 이 렌르 샤토성당을 마리아가 아닌 막달라 마리아를 기리는 성당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혹시 성당 지하에 있는 두 개의 무덤이 혹시 막달라 마리아와 그녀의 딸의 무덤은 아니었을까 라고 추측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이 성당은 사유지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 상당지하를 파서 조사할 수가 없다고 한다.

 

성당지하에서 캐낸 양피지문서를 통해서 기독교의 큰비밀을 알고있는 소니에르신부는 이 성당내부에 비밀코드를 숨겨놓았다고 한다.

성당내부에 사제들의 동상이 빙 둘러싸고 세워져있는데, 성 제르맨, 성 로슈, 성 안토니 은자, 성 안토니, 성 루카 등 이렇게 5명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그런데 이들 동상이름의 앞글자만 모으면 ‘GRAAL’이란 글자가 만들어지는데, 이글자는 바로 성배를 뜻한다. 또한 이들 동상들을 선으로 이어주면, 정확하게 ‘M’자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소니에르신부는 이성당을 막달라 마리아에게 헌액하기 위해서 지으면서, 이와같은 비밀코드를 숨겨놓았던 것이다. 소니에르신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성배가 바로 막달라 마리아를 뜻한다는 의미이다.

 

위에 열거한 여러가지 근거를 바탕으로 해서, 일부의 학자들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을 해서, 사라를 낳았고 그들이 프랑스남부지방으로 이주해와서 후손들을 낳았으며, 그 후손들이 메로빙거왕조를 이뤘다고 하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관련된 사람들은 이같은 사실을 굳이 숨길 필요가 있었을까, 왜 떳떳하게 세상에 알리지 않았을까? 

 

만약에 고대나 중세의 시기에 이러한 예수의 결혼설과 후손들에 대한 내용을 외부에 공개했다고 한다면, 신성모독죄에 걸려서 무서운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중세에는 신성하고 성스러운 존재인 예수를 모독했다고 판단되면, 가장 무서운 처벌인 화형으로 다스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빈치는 자신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 비밀스러운 코드를 남겨서, 비밀리에 후손들에게 전수하려 했던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생 쉴피스성당은 다빈치코드에 나오는 성배를 찾아가는 길목에 위치한 성당으로 알려져서, 해마다 많은 방문객들이 방문한다고 하는데, 성당의 창문에 PS라는 표시가 새겨져있는데 PS는 시온수도회를 의미한다고 한다.

 

시온수도회는 프랑스에 정착한 예수의 후손과 막달라 마리아의 정체를 수호해온 결사단체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1950년대에 파리박물관에서 시온수도회와 관련된 비밀문서를 찾아냈다고 한다.

 

이 비밀문건에는 메로빙거왕조를 시작으로 해서 아이작 뉴턴, 빅토르 위고, 클로드 드뷔시, 레오나르도 다빈치등 유명인사의 이름이 적혀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시온수도회의 수장들이라고 한다.

 

영국 템즈강변에 있는 템플교회는 템플기사단이 지었다고 알려져있다.

템플기사단은 시온수도회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단체로서, 두단체 모두 성배와 성배와 관련된 가족들을 수호하고 지키는 단체라고 한다.

 

 

템플기사단은 1118년도에 결성되어서 십자군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크게 이름을 떨쳤던 단체로 십자군전쟁을 통해서 예루살렘의 성지를 되찾았으며, 또한 예루살렘을 수호하는 임무를 맡았던 결사단체로 유명하다.

 

템플기사단은 예루살렘성지를 7년동안 수호하고 난후에 다시 돌아왔는데, 교황을 이들에게 엄청난 권력을 주었다고 한다.

 

1800년대초에 영국발굴단이 예루살렘을 방문해서 예루살렘사원의 지하를 발굴했는데, 그곳에서 보물은 없었고 대신 템플기사단의 문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마 템플기사단이 그곳에서 어떤 보물을 이미 가져갔다고 한다. 예루살렘 성지에서 기독교에 관련된 문서와 보물을 갖고 본국으로 돌아간 템플기사단은, 교황으로부터 무한권력을 부여받고서 거의 300년동안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한다.

 

300년 동안 유럽의 각지역에 지부를 두고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려왔던 템플기사단은 13071013일의 금요일에, 교황 클레멘스 5세의 명령으로 유럽템플기사단 전원이 체포되었다고 하며, 이단으로 규정된 체로 화형을 당하는 등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일부의 학자들은 이때 템플기사단이 갑자기 이단으로 몰려서 처형되었던 이유는 이들이 예수의 결혼설에 관련된 비밀을 알고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템플기사단이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결혼설에 관한 문서를 찾아내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교회는 이들의 입을 막으려고 이들에게 막대한 권력과 부를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템플기사단이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권력이 커져버리자, 위기감을 느꼈던 교황이 이들을 적대세력으로 규정하고 처단해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교황으로서는 예수의 결혼에 관한 비밀을 영원히 감출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템플기사단의 단원들을 모조리 처형해버렸다고 한다.

 

템플기사단이 해체될 무렵에, 탬플기사단의 마지막 단원이었던 윌러엄 싱클레어가 자신의 후손들에게 예수의 비밀을 전수해주었던 것이고, 싱클레어후손들은 시온수도회의 수장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예수와 관련된 비밀들을 전달해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경로로 예수의 결혼설을 알게된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시온수도회의 수장으로서, 예수의 비밀과 자손에 대한 내용을 어떻게든 후손들에게 전수해 주어야할 의무감을 느꼈던 것이다.

 

당시 교회에서는 예수의 신성함과 거룩함에 반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단으로 규정했고 신성모독으로 처벌했기 때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교회에 들키지 않는 비밀코드를 자신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 몰려 새겨넣어서, 어떻게든 후손들에게 전달해주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보고있는 성경은 313년 로마의 교황 콘스탄틴누스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유일한 성경경전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당시 성경을 공인할 때에 아리우스파와 아리나시오파가 서로 대립했는데, 아리우스파는 예수를 인간적인 존재임을 강조했으며, 아타나시오파는 예수를 신적인 존재로 인식했다고 하며, 두 파벌이 초기에는 대립했지만,

325년 니케아 공의회가 열려서 성경채택을 놓고 표결에 부쳐졌고, 예수를 신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는 아타나시오파의 주장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그이후 예수를 인간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아리우스파는 이단으로 몰렸다고 하며, 그러한 성경기록과 다른 문서기록들은 모조리 폐기되고 없애버렸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주최한 니케아 공의회 때, 결정된 성경내용과 교리가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져서 현재 우리가 보는 성경의 내용을 이룬다고 한다.

 

그러니까 콘스탄티누스대제가 성경을 공인했던 니케아회의 이전에는 지금의 성경과 다른 내용으로된 다른 복음서들이 엄청나게 많았다고 한다.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시리아에도 복음서가 있었으며, 터키에도 복음서가 있었고, 이집트에도 복음서가 있었는데, 이들중 오직 로마교황 콘스탄틴누스가 채택한 복음서만이 유일한 복음서로 공인되었고, 다른 나라의 복음서들은 모조리 이단으로 규정되어 폐기처분되었다고 한다.

 

 

, 콘스탄티누스가 공인하기 전에는 지금의 성경의 내용과 다른 내용의 복음서들이 많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황제가 지금의 성경과 조금이라도 다른 내용을 가진 다른 복음서들을 모두 다 없애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지금의 성경이 유일한 성경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의 성경은 4세기 로마교황 콘스탄티누스의 입맛에 맞는 내용들만 골라서 만든 성경이라고 보면 된다.

그의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내용들만 골라서 모아놓은 성경인 것이지, 이것이 무조건 진리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또한 예수의 탄신일이 ‘1225로 되어있는데, 이것도 콘스탄티누스황제가 임의로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1225은 예수의 원래 탄신일이 아니라, 당시 로마에서 섬기던 태양신의 탄신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수의 탄신일을 ‘1225로 정하면 로마의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기 쉬우므로, 황제가 ‘1225을 예수의 탄신일로 공표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오늘날 우리가 보고있는 성경이나 기독교의 교리의 상당부분은 4세기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들만을 골라서, 임의적으로 정한 것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집단들은 모조리 제거했던 것이다.

유럽의 가장 큰 권력을 누렸던 로마황제가 결정하면 모두가 따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의 성경이 콘스탄티누스대제의 공인을 받아서 결정된 후에 다른 수많은 복음서들은 모두 불살라서 폐기되어버렸으며, 이집트의 나그함마디 복음서도 이때에 대부분 폐기되었고, 극히 일부만 몰래 숨겨져서 지금까지 전해져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를 신적인 존재로 공식화하는 결정을 하고 난 후에, 예수의 결혼설등 예수를 인간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다른 복음서들은 더이상 설자리를 잃었고, 모두 폐기처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배와 잃어비린 장미의 저자인 마가렛 스타버드의 주장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제자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지위를 갖고있었다고 한다. 

숨겨진 복음서들의 기록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는 베드로보다도 더 높은 지위에 있었다고 한다.

 

나그함마디 복음서에는 베드로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말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마리아여, 예수께서 다른 어떤 여자들보다도 그대를 더욱 사랑하는 것을 잘 알고있어요.

예수께서 우리가 모르는 것을 그대에게 말한 것이 있다면, 우리에게 얘기해주세요라고 예기할 정도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사도들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다고 추정되며, 베드로보다도 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창녀로 둔갑하고 만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처럼 다른 복음서들에는 최고의 지위를 가진 사도였던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로 둔갑하게 된 것은 기독교지도층의 의도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로마교황은 예수를 신성화시키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모든 내용들을 폐기하고 삭제해버렸던 것이다. 예수의 결혼설의 기록들을 폐기처분하면서, 예수의 아내라고 알려진 막달라 마리아의 존재감을 아주 없애기 위해서, 막달라 마리아를 추악한 창녀로 규정함으로써, 그 존재감을 의미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여자에게 가장 치욕적이고 무의미한 존재인 창녀라는 타이틀을 씌움으로써,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논의조차도 의미없게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여기까지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했다는 예수의 결혼설에 관한 여러가지 근거자료들이다. 이렇게 예수의 결혼설은 여러가지 근거들을 갖고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하나의 가설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예수의 결혼설에 대한 반박자료나 근거들도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예수의 결혼설은 다빈치코드의 저자 댄 브라운, 또다른 작가 마가렛 스타버드과 같은 작가와 일부의 학자들이 제기해왔던 것으로, 아직은 가설에 지나지않을 뿐이며, 무조건 맹신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기존의 기독교인들은 변함없이 구세주라고 알려진 예수를 신성스러운 존재로 계속 믿어나가면 될 것이다.

단지, 예수의 결혼설은 신앙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기존에 예수에 대한 믿음과 종교는 그대로 간직한 채, 단지 학문적으로 예수의 결혼설에 대해서 좀 더 과학적인 연구와 관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기존의 기독교도인들은 그대로 예수님을 계속 믿어가면 될 것이다.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종교적인 차원을 떠난, 학술적인 차원에서 일부의 학자들이 제창하고 있는 예수의 결혼설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만일 예수의 결혼설에 관한 부정할 수 없는 고고학적으로 확실한 증거자료들이 나온다면, 무조건 교리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배척만 할 것이 아니라, 한번 심층적으로 더 연구관찰해볼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지금의 기독교 교리와 성경내용은 4세기초에 콘스탄티누스 로마황제가 과거의 기록들 중에서 일부만 뽑아서 만들어놓은 것들이다.

새로운 내용이 나온다고 하면, 학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며, 이러한 연구분석들은 인류문명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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