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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건국의 일등공신 소서노, 아들, 두개의 나라를 건국한 여장부

 

어메이징스토리’ 163회에서는 두 개의 나라를 건국했지만, 사랑에는 실패한 비운의 여인 소서노를 방영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애절함을 안겨다 주었다.

 

고구려를 건국한 시조 주몽은 원래는 동부여의 왕자였다고 한다. 기원전 고조선이 망하고 난 뒤, 만주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 강력한 나라는 바로 부여였다고 한다.

 

고조선이 한나라의 침입으로 인해서 멸망하고, 만주의 일부분에 현도군과 요동군을 세워서 한나라의 식민통치를 받았지만, 만주의 길림성과 흑룡강성 일대에는 강력한 철기문화를 앞세운 거대한 제국이 버티고 있었으니, 바로 우리 예맥족(한민족)이 세웠던 부여란 나라였다.

 

 

그런데 부여에서 왕족의 일부가 동쪽으로 이동해서 새로운 부여가 태동하였고, 동쪽에 있는 부여라고 해서, 나라이름을 동부여라고 하며, 동부여도 북부여 못지않게 크게 번성해나갔으며, 금와왕때 그 위세가 만주전역에 크게 떨치며 대국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런데 금와왕에게는 정실의 자식인 대소왕자가 있었고, 또한 첩실의 자식이 주몽왕자가 있었다고 한다.

금와왕이 이끄는 동부여의 다음 보위를 이울 후계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정실의 자식이나 장자인 대소왕자가 되는 것이 순리였다.

대소왕자는 왕자중에 가장 맏아들이자, 또한 정실의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부여의 후계자 구도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주몽때문이었다.

주몽은 금와왕의 첩실인 유화부인의 아들로서, 왕자였지만 서자였기 때문에 왕의 후계자자격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주몽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무예가 출중하였고, 특히 활을 기가 막히게 잘 쏘았다.

정실의 왕자인 대소왕자나 다른 왕자들보다도 주몽이 더욱 총명하고 무예가 뛰어났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금와왕의 총애를 많이 받았으며, 성인으로 성장한 뒤에도 그의 뛰어난 무예솜씨로 인해 왕의 후계자감으로 많은 신하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주몽이 금와왕은 물론 많은 대신들로부터 신망을 받으며 왕의 후계자감으로 거론되자, 정실의 자식인 대소왕자의 극심한 견제를 받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정실의 자식인 대소왕자는 혹시 후계자자리를 주몽에게 빼앗길까봐 두려워서 주몽을 미워하고 극도로 견제했는데, 결국 자신이 왕이 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주몽을 죽이려고 모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은 대소왕자가 자신의 아들 주몽을 죽이려 음모를 꾸미는 것을 알아차리고, 주몽을 불러 대소왕자가 너를 죽이려고 군사를 풀었으니, 너는 부여땅을 떠나서 멀리 가서, 장차 큰 대업을 이루도록 하거라고 당부했고, 주몽은 자신을 따르는 일부 가신들을 데리고 몰래 동부여를 탈출했다고 한다.

 

대소왕자가 군사들을 이끌고 쫒아오는 긴박한 상황에서, 주몽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예씨부인과 어머니 유화부인을 어쩔 수 없이, 동부여 궁궐에 남겨놓고서 혼자서 궁궐을 빠져나오게 된다.

 

주몽은 자신을 따르는 부하 오이,마리,협보를 데리고, 동부여를 탈출하여 남쪽에 있는 졸본지역으로 도망갔다.

그런데 주몽이 도착한 졸본지역에는 다섯 개의 부족들이 할거하고 있었는데, 그부족들 중 계루부가 가장 규모가 크고 경제력이 풍부하였다.

 

 

주몽은 동부여제국의 왕실의 혈통을 물려받은 왕자로서, 이 졸본지방에 국가를 세울 야심찬 계획을 갖고있었다.

그렇지만 주몽은 동부여에서 갑작스럽게 탈출하는 바람에 나라를 세울만한 물자나 경제력을 보유하지 못한 상태였고, 주몽은 졸본지역에서 가장 부강한 계루부의 연타발의 둘째딸과 연분을 맺게된다.

 

나라를 건국할 야심을 갖고있었던 주몽은 계루부의 족장인 연타발이 자금력이 풍부한 것을 알고, 그의 둘째딸인 소서노에게 접근해서 소서노를 유혹한 끝에, 그녀와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소서노는 한번 결혼했다가 남편이 죽는 바람에, 과부가 된 여인이었다.

 

주몽이 소서노에게 청혼을 한 이유는 나라를 건국하는 데에 필요한 풍부한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판단된다.

실제로 주몽은 소서노와 결혼함으로써 고구려를 건국하는 데에 필요한 소서노의 아낌없는 경제적 지원을 받았으며, 소서노의 풍부한 물질적 도움을 받고, 국가를 세우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소서노는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는 데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것이다.

주몽은 소서노의 경제적 지원을 백그라운드로 삼고, 자신을 따라온 가신과 가병들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확충해나갔으며, 계루부를 비롯한 소노부, 관노부, 절노부 등 주변의 5개부족들을 회유와 군사적인 방법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통합시켜 나갔다.

 

주몽이 연타발의 둘째딸이자 이미 한번 결혼했다가 미망인이 된 소서노와 결혼했던 이유는, 그녀의 엄청난 경제력을 고구려라는 나라를 건국하는 데에 필요한 밑거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판단된다.

 

주몽의 둘째부인 소서노는 우리나라 역사상 희대의 여걸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서노는 고구려시조인 주몽의 부인이자, 백제를 건국한 온조의 모후로서, 우리나라에서 2개의 고대국가를 창업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여걸 중의 여걸이다.

 

소서노는 주몽을 만나기 전에 이미 부여의 귀족인 우태라는 사람과 혼인을 한 적이 있었지만, 우태가 일찍 죽는 바람에 우태와의 사이에 태어난 비류와 온조를 홀로 키우고 있었는데, 그녀는 계루부 족장의 딸로서 엄청난 재물과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주몽은 이렇게 경제력이 풍부한 소서노와 혼인함으로써, 그녀의 물질적 경제적 지원을 크게 받아서 고구려를 건국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고, 자신의 국가창업을 도와준 소서노를 극진하게 아껴주었으며, 소서노의 두아들 온조비류를 자신의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주었다고 한다.

 

실제 사서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우리 어머니(소서노)께서 가산을 다 떨어서 (고구려건국에) 협조하여 왕업을 이루었다라고 온조가 자신의 어머니가 고구려건국에 커다란 경제적 지원을 했던 것을 언급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고구려를 창업하고 비류국’ ‘행인국’ ‘옥저등 주변의 여러 부족국가들을 통합해서, 영토를 넗히고 국위를 크게 떨치면서 나라가 안정권에 들어서게 된 후, 주몽에게 한가지 고민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고구려의 다음보위를 이을 자신의 후계자를 정하는 문제였다.

 

 

고구려건국 16년이 지난 후, 주몽은 부인 소서노를 불러서, 머지않아 자신의 후계자를 결정하게 될 것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말해주었다.

소서노는 후계자결정소식에 마음속으로 크게 기뼈하였다고 하며, 당연히 자신의 두아들인 온조비류중의 하나가 왕의 후계자로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몽의 후계자 결정으로 인해서, 주몽과 소서노 사이에 커다란 알력과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고구려건국의 일등공신이자 고구려건국의 경제적 기반이 되어주었던 소서노는 당연히 자신의 두아들 중 하나가 주몽왕의 후계자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주몽의 또다른 부인과 아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주몽은 소서노와 혼인하기 전인 동부여에 왕자로 있을 무렵에, 이미 예씨부인과 혼인을 해서 유리라는 아들까지 두고 있었는데, 문제는 주몽이 이러한 사실을 오랫동안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맨주먹으로 졸본땅에 도착해서 국가를 세우기위해서, 소서노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했던 주몽은, 자신의 혼인사실을 숨긴 채 소서노에 접근해 그녀를 미혹해서, 그녀와의 결혼을 성사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주몽은 자신의 바램대로 고구려를 성공적으로 건국하고, 주변의 수많은 부족들을 복속시키면서 나라가 안정권에 들어서자, 주몽은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본처인 예씨부인과 아들 유리를, 부하를 시켜서 몰래 왕궁으로 데려왔던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기록에도 왕자 유리가 어머니(예씨부인)와 함께 부여에서 탈출하여, 고구려로 들어오니, 주몽왕이 크게 기뻐하여 그를 태자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전혀 모르고 있었던 주몽의 본처와 아들을 소개받은 소서노는 하늘이 무너지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말았다.

더욱이 주몽은 자신의 본처인 예씨부인을 왕후로 임명하고, 소서노는 후궁인 소후로 강등시켰다고 하니, 소서노가 느끼는 충격은 상상 이상으로 컸을 것이라고 본다.

 

한술 더떠서 주몽은 소서노와 예씨부인, 대신들을 모아놓고 중대발표를 하였는데, 자신의 본처의 아들인 유리를 다음보위를 이을 태자로 전격 결정해버렸다, 이러한 기록들은 신채호가 쓴 조선상고사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이다.

 

자신이 죽어라고 불모지를 갈고 닦아서,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거대한 옥토로 만들어놨는데, 어느날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곳이 원래 내땅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그땅을 모두 차지해버리고, 자신은 그땅의 소작인으로 전락해버렸다고 하면, 충분히 소서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몽과 소서노의 결혼은 주몽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정략결혼이었던 셈인데, 그런 주몽의 마음을 전혀 몰랐던 소서노는 자신의 순정을 다바쳐서 주몽을 사랑하고, 물씬 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는데, 느닷없이 주몽의 본처와 아들이 나타나서, 왕의 후계자자리를 빼앗아 버렸으니, 소서노는 엄청난 충격과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왕위 세습자가 본처의 아들인 유리로 결정이 나자, 너무나도 충격을 받을 소서노는 주몽에게 이렇게 따졌다고 한다. 소서노는 폐하께서 어떻게 고구려를 세웠으며, 어떻게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까? 소첩이 지금까지 모든 것을 희생하며, 뒷바리지해온 댓가가 고작 이것이었습니까?’라고 주몽왕에게 따졌다고 한다.

 

그러자 주몽은 소서노에게 부인은 내 본처가 부여에서 볼모생활(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에, 십수년간 왕비처럼 호강하고 살았으면 되지 않았소이까? 부인이 화려한 왕궁에서 호강하는 동안, 내 본처(예씨부인)는 감옥같은 부여의 별실에 갇쳐서, 고통스럽게 살아왔답 말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왕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물질적 정신적 도움을 다주면서, 희생해왔던 소서노는 왕비자리도 예씨부인에게 빼앗끼고, 왕의 후계자자리까지 예씨부인의 아들에게 빼앗겼으니, 주몽왕에 대한 원통함과 배신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컷으리라!

 

고구려건국 전부터 알콩달콩한 사랑을 키워왔던 그토록 금슬이 좋았던 주몽과 소서노 사이가 왕의 후계자 결정문제로 인해서 금이 가기 시작했으며, 급기야는 돌아올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주몽이 어려웠던 시절에, 소서노에게 했던 알콩달콩한 사랑의 속삭임과 청혼의 말은, 모두 주몽이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정치적 책략이나 술수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서노는 결국 중대한 결심을 하게된다.

 

 

소서노는 주몽왕에게 자신은 더이상 왕비나 왕의 후계자자리에 미련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두아들을 데리고, 고구려를 떠나버렸다고 한다.

주몽의 본심이 자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제력과 권력을 이용했다는 것을 깨달은 소서노는 더이상 고구려왕실에 남아있을 필요성을 못느꼈던 것이다.

 

소서노가 고구려를 떠나면서 남긴 애틋한 말이 가슴속 깊이 폐부를 찌르면서 애절함을 남기고 있다.

폐하, 폐하와의 소중한 인연은 저만의 착각이었나요? 가슴속에 묻어둔 꽃의 향취는 세월이 많이 지나도 바래지않는 법이라지요, 소첩이 폐하의 꽃일 수는 없었나 봅니다

 

소서노는 주몽에게 진정한 사랑을 원했지만, 주몽은 소서노를 고구려건국을 위한 동업자 내지 동지로만 그녀를 이용했다고 볼 수 있으며, 주몽이 고구려건국을 성공시키고 난후, 자신의 본처를 데려와 왕비로 삼았으니, 소서노 입장에서는 주몽에게서 버림을 받았다고 느꼈던 것이다.

 

 

소서노는 주몽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떠났다는 것을 느낀 순간, 주저없이 두 아들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고구려를 떠났으며, 자신을 따르는 대신 10명과 수많은 백성들을 이끌고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가서, 또다른 나라 백제를 건국했다.

 

결국 소서노는 고구려에 이어 백제를 건국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소서노라는 한 여성이 고구려백제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두개의 고대국가를 건국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역사가 신채호는 자신이 쓴 조선상고사에서 소서노는 우리나라 역사상 유일한 여성창업자일 뿐아니라, 고구려와 백제 두나라를 건국한 여장부였다라고 소서노를 극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대국가인 삼국 중에서 신라만 빼놓고, 나머지 두 개의 나라가 모두 소서노의 도움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소서노의 조력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고구려와 백제는 탄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소서노는 자신의 바램대로 주몽의 사랑을 얻는 데에는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2개의 고대국가를 건국했던 희대의 여장부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 전체를 살펴보아도, 두 개의 국가의 건국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여자는 오직 소서노 한 여성뿐이다.

 

주몽에게서 버림을 받아서 두아들을 데리고 낮설은 남쪽땅으로 내려오며 비통해하는 그녀의 한맺힌 절규와 슬픔의 메아리가, 가슴속 깊은 곳까지 애절하게 전해오지만, 그녀가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고대국가가 더 빨리 성립될 수 있었고, 우리나라의 고대문명이 더 화려하게 빛을 볼 수 있었기에, 그런 소서노는 우리나라에 여명을 가져다준 선각자이자, 희대의 여장부로 평가할 만 하다.

 

 

폐하, 저는 폐하에게 어떤 존재였습니까? 저는 폐하의 영원한 꽃이 될 수는 없는 존재였나봅니다?’ 소서노가 주몽왕을 떠나면서, 부르짖었던 한맺힌 절규가 가슴속에 사뭇치게 다가온다.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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